첫 봄같이 / 고재종
논두렁에 산수유꽃 사태난 것은
며칠째 불어대는 동부새의 짓이다
꽃 피는 그 앞에서 무슨 공을 다투랴
탈탈탈탈, 경운기 몰아댈 때마다
세섯덩이 넘어가고 넘어가면
고비고비 사람도 참 많이 넘어야겠다
이곳저곳의 쥐불연기 보아라
고구려고구려 오르는 저 모습이
땅의 기도 아닌들 어찌 그리 간절하랴
아른아른 일렁이는 산수유꽃 너머로
부르르 진저리치는 뒷산이 있어
목청에 기름을 칠한 동박새도 짖어댄다
사람은 참 많이도 절망하지만
아랫마을의 대숲은 어느 때나 푸르다
동부새 그 짓거리에 또 몸살을 앓겠지
훈김 오른다, 쟁깃발에 넘어가는 논
훈김 없으면 어떻게 씨를 품으랴
오늘밤 두엄자리도 몸을 뒤채리라
새참 내온 할머니는 탁배기 두어 잔에
울컥 치밀어 우는 것이 아닐 게다
칠순토록 이 땅은 질긴 업장이었다
모두 다 봄의 짓이고 목숨의 짓이다
탈탈탈탈, 적막강산 깨우는 짓도
한 세월 너끈하게 채잡는 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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