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대하여 / 이기철
아무리 방탕 가운데 갖다놓아도
인간은 짐승은 되지 않는다
그는 직립하고, 그는 걸으면서 생각한다
악을 만지고 돌아온 손이 희고 깨끗한 유방을 만진다
거짓과 협잡에서 돌아와서도 온돌의 잠은 진실하다
맑은 물이 구정물 속에서 몸을 망쳐도
나무들은 빗줄기와 수직의 통화를 한다
이 세상이 온통 미덕밖에 없다면
세상은 오히려 삭막할 것이다
도처에 악이 있어 선은 빛난다
사랑의 서간집에 가득한 말들도
한 마디 戀詞에 비기지 못한다
권력과 돈은 누구누구의 것이지만
연애와 섹스는 누구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것이다
이 평정 외에 무엇이 더한 진리란 말인가
예컨데 性이라는 밥상에 놓인 반찬 중에
추악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연애는 수박의 속살처럼 감미롭지만
그것을 말하는 언어는 불순하다
연애는 육체의 언어일 뿐 문자의 언어가 아니다
그러나 방만함이여, 몸을 줄여라
도덕이라는 파수꾼이 없었다면 성은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그것의 금기를 지니고 연애는 자란다
똥밭 옆에 참외꽃이 피듯
악 가까이에서 신성이 자란다
인간의 삶은 수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연애와 섹스만은 한 치의 수식도 허용치 않는다
누가 인간의 가슴에 연애라는 꽃나무를 심었는가
그러므로 연애여
너는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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