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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춤추는 잠자리 / 김시헌

춤추는 잠자리 / 김시헌

 

 

 

 

살고 있는 아파트의 뒤뜰이 많이 넓다. 뜰의 둘레에는 자동차가 죽은 듯이 엎드려서 낮잠을 잔다. 그 사이사이에서 꼬마들이 뛰놀고 있다. 여름에는 잠자리를 잡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봄이 되면 세발자전거를 탄다.

나는 그들의 관람자가 된다. 2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자연 속의 연극 구경이다. 넘어지는 놈이 있고, 싸우다가 울음을 터트리는 놈이 있고 어깨를 끼고 아장아장 걷는 놈도 있다. 어른이 없어도 그들은 그들대로의 사회를 만들고 있다.

지난여름이었다. 어디에서 모여 왔는지 잠자리가 수없이 뜰 위를 날고 있었다. 백 마리도 넘을 것 같은 메밀잠자리가 허공을 무도장으로 만들고 있다. 풀도 없고 물도 없는 삭막한 평지를 그들은 왜 날고 있는 것일까.

그 아래에 십여 명의 꼬마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따라다녔다. 잠자리를 향해 채를 내리치지만 한 마리도 걸리지 않는다. 그 속에 올해 일곱 살인 손주놈이 끼어 있다. 나는 손주놈의 동작에 눈을 쫓다가 갑자기 어떤 충동이 일어났다. 아파트의 계단을 밟고 바쁘게 내려갔다.

“내가 잡아 줄게.”

손주는 쉽게 채를 나에게 건넨다. 나는 곧 잠자리의 무도장 속에 들어갔다. 키가 큰 어른이 채를 들고 섰는데도 그들은 개의하지 않았다. 다름없이 네 날개를 나풀나풀 흔들 뿐이다.

한 놈이 낮게 떠서 가까이 오고 있었다. 나는 그 놈에 조준을 하고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채를 내리쳤다. 적중했다는 육감이 왔다. 급하게 채의 그물을 땅바닥에 엎었다. 그물 속에서 잠자리는 몸을 떨고 있었다. 나는 기뻤다. 잠자리가 잡힌 사실이 너무 좋았다. 손주놈이 달려와서 껑충껑충 춤을 춘다. 조심스럽게 잠자리를 잡아 내었다. 날개를 떨고, 몸을 흔들고, 작은 입으로 나의 손등을 깨물었다. 잠자리는 손주가 내미는 잠자리집에 수용이 되었다. 집 속에 들어가자 나갈 곳을 찾았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나는 다시 잠자리의 무도장 속에 들어갔다. 잠자리가 잡힐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잠자던 동심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열 살 전후 때 나는 참새 새끼도 잡고, 장수잠자리도 잡고, 개구리도 잡고, 메뚜기도 잡았다. 그들을 잡는 일이 최대의 기쁨이었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그들과의 싸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즐겼다. 그런데 70년이 지나간 지금도 포획충동은 그때와 다름이 없다. 아른 속에 어린이가 그대로 살아 있다.

네 마리의 잠자리를 잡았다. 잡는 일에만 열중한 나는 다른 무엇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왔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말없이 잠자리채를 손주놈에게 주었다. 나의 동작에 손주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없이 받는다. 그리고 나는 잠자리집으로 갔다. 문을 열어 주고 싶었다. 여러 마리가 한데 엉겨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한 마리는 그물 밖에 굵은 눈을 내놓고 나를 노려본다.

‘할아버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소?’ 하고 야단을 치는 것 같다. 그럴수록 나의 마음이 약해진다.

문을 반쯤 열었을 때 손주놈은 눈치를 차린 모양이다. “할아버지, 왜 열어?” 하는 것이었다. 손주의 말로 나는 손이 멈추어진다. 얼마나 실망을 할까. 나는 다시 문을 얼른 닫았다. 생명과 손주 사이에서 나는 잠시 주저한다. 그러다가 그곳을 떠나기로 한다.

달라진 것이 한 가지 있다. 어릴 때는 잡는 것으로 끝났는데 지금은 잡은 것을 후회한다. 생명이 무엇인가를 알았기 때문이리라. 포획충동은 옛날 그대로인데 자비충동이 새로 만들어졌다.

나는 계단을 밟으면서 아파트의 2층으로 올라간다. 잠자리집 안에서 치르럭 거리는 그들의 동작이 당분간 나의 가슴 안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