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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반장님 별전(別傳) / 김인기

반장님 별전(別傳) / 김인기  

 


  정작 본인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지금 내가 말하려는 반장님은 여러 가지로 별스럽다. 물론 내가 이 분을 이렇게 반장님이라 하는 데에도 다 까닭이 있다. 누구나 사생활은 존중을 받아야 하겠지만, 반장님은 홀로 사는 터이니까, 특히 고려할 사항이 더 많다. 그래서 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 분을 세례명 대신에 그저 반장님이라 칭하련다. 마침 이 분이 조그마한 모임의 반장이니까.

  반장님은 젊은 시절에 파독간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구인들의 개인주의는 전혀 배우지 못해서 남들의 일에 너무 쉽게 관여한다. 특히 전교(傳敎)에 지나치게 열성을 보여서 이웃들과 도리어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걸 본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왜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는 거냐!’ 이 분은 이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신앙의 자유만큼 불신앙의 자유도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내 상식이 반장님한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건 그야말로 망발이다. 반장님은 평생 혼인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분한테는 더러 유아스러운 면모도 보이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주 철저하다. 내가 보기에 반장님은 수녀가 되었어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말에 대하여 반장님 본인은 그게 어디 사람의 뜻대로 되는 일이냐는 반응이었다.

  반장님이 한때 내게도 성당에 다니라고 열심히 권유하였다. 내가 예전에 영세 받은 걸 알고는 반장님이 먼저 고백성사부터 보라고 하였는데, 이 분이 바로 아내의 대모님이기도 하여, 그 열성이 아주 대단했다. 그래도 내가 종교나 사상이란 누가 뭐란다고 함부로 따를 게 아니라며 불응하였더니, 이 분은 그 나름으로 내가 고백성사를 보지 않는 이유를 상상하였는데, 그 내용이 과연 반장님다웠다.

  그러니까 내가 여자들과 이미 많이 상관하였고, 이런 이력을 고백소에서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 이게 반장님의 엉뚱한 생각이었다. 남자들은 원래 다 그렇고 그렇다더라. 순식간에 반장님은 나를 바람둥이로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전개되는 그 분의 분석을 아내가 듣고 내게 전했는데, 처음에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게 그런 내용이어서, 내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럴 뜻이 없는 사람한테 그 무엇을 권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반장님은 늘 열심이었는데, 내가 하루는 견디다 못해 이렇게 항변하였다. ‘내가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야 아니지만, 교인들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나는 그리 어긋나게 살지 않는데, 왜 자꾸 그럽니까?’ 이에 대한 반장님의 답변은 바로 이렇다. ‘그러니까, 더욱 안타깝지!’ 그 종교야 무엇이든 그 행실이 반듯하면 충분하다는 내 견해가 반장님한테는 일종의 궤변이다.

  그렇다고 내가 반장님과 따지랴. 내게도 어쩔 수 없는 보수성이 있어서, 나도 연세 많은 분과 언쟁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실수한다고 치자. 그래서 내가 그 분과 이론 투쟁을 벌여 이긴다고 하자. 그런들 그게 무슨 자랑이 되겠는가. 더구나 이론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서는 내가 그 분의 일관성에 미치지 못한다.

  오늘도 반장님은 바쁘기만 하다. 이곳저곳으로 기도하러 다니느라 바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활동으로 바쁘다. 이제는 이자율이 낮아서 혼자 검박하게 살아도 생활에 어려움이 많을 텐데, 겉으로 드러나는 그 분의 모습은 여전하다. 그 걸음걸이마저도 그대로이다. 남들한테 자기 방식을 적용하려는 그 고집만 없으면 좋으련만, 평생 이어온 그 습관을 이제 누가 어쩌랴.

  반장님은 이미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었다. 그래서 그 연배의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초연하다. 이러다가 병이 들면 나야 그냥 그대로 하느님한테로 가는 거지. 설령 무슨 일이 당장 닥치더라도 나는 더 살겠다고 야단스럽게 굴지 않겠다. 이게 이 분의 소신이다. 이래서 이 분은 건강검진도 받지 않는다.

  날이면 날마다 반장님은 『신구약성서』를 읽고, 묵주기도를 드리며, 성체조배를 한다. 그 분이 묵상을 하는 거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정성이 내 상상을 초월한다. 나와 같은 이들이 무의미하게 여기는 일들을 그 분은 일심으로 봉행한다. 성당에는 언제나 가장 아끼는 옷을 깨끗하게 입고 다녀서 교우들한테는 아주 돈 많은 할머니로 소문이 나기도 한다.

  태중에서도 반장님은 천주교도였다니까, 그 신앙의 내력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내가 그 이름을 물으면 그 분은 그만 얼버무리며 도망을 간다. 바로 남자 이름이기 때문이다. 남아를 선호하는 오랜 풍습이 그 이름에 흔적으로 남았다. 그래도 그 분이 당시로선 개명한 집안의 출신이어서 어느 정도 교육도 받았다.

  이웃에 살아서 나도 자연히 그 분의 생활을 잘 안다. 어느 날은 내가 바깥에서 바람을 쐬고 있자니, 반장님이 내게 뭔가를 진지하게 말하려 했다. 그래서 나도 무슨 중대한 일인가 하며 귀를 기울였는데, 역시 내게 성당으로 가기를 종용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나일론신자’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나 자신도 한심하고 천주교회에도 죄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내 발언이 무척이나 단호한 의지의 표명인데도, 반장님은 그만 희망의 징표로 읽는다. 사람이 지나치게 순박하거나 그 사랑이 너무 치열한 것이다. 아내도 그 모임의 구성원이다. 마침 이번엔 아내가 유사였는데, 관례와는 달리 모이는 장소를 반장님의 집으로 정했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은 너무 어려서 분위기를 흐릴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임엔 예닐곱 명의 반원들이 모여 기도도 하고 대화도 나눈다. 유사는 으레 몇 가지 음식을 마련한다.

  아내가 반모임 전날에 현관의 문에 붙은 쪽지를 떼어 내게 보인다. 바로 반장님이 아내한테 보낸 것이었다. 그 글을 보니 반장님의 말투와 발음이 그대로 표기가 되어서 내게도 마치 직접 대면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옐리사벳!

  내일 반모임 알고 있다고 믿고 반원들에게 연락했으요.

  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