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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작은 운동장의 가르침 / 정진권

작은 운동장의 가르침 / 정진권 

 

 

 

 

내 연구실은 2층에 있다. 이 연구실의 창가에 서면 저 아래로 운동장이 내려다보인다. 이 운동장은 겨우 축구장 하나가 들어갈 만한, 어찌 보면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 아주 작은 규모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의 그 귀여운 운동장이 생각날 때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이었을 때, 나는 그 운동장에서 난생 처음으로 줄 서는 법을 배웠다. 가로세로가 다 같이 똑바른 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던 어린 나에게 그것은 질서에 대한 최초의 눈뜸이었다. 나에게 다소나마 질서 의식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운동장에서의 그러한 체험 때문일 것이다. 나는 또 그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주하는 법을 배웠다. 모든 주자들에게 공평한 출발선, 모든 주자에게 동시에 들리는 선생님의 화약 총 소리, 나에게만 유리한 것이 제일인 줄 알고 떼를 쓰던 어린 나에게 그것은 공평에 대한 최초의 유리한 것이 제일인 줄 알고 떼를 쓰던 어린 나에게 그것은 공평에 대한 최초의 체험이었다. 나에게 다소나마 불공평에 대한 혐오감이 있다면, 이 역시 그 운동장에서의 그러한 체험 때문일 것이다. 나는 차차 상급생으로 자라면서 기마전을 배우고, 축구를 배우고, 줄다리기를 배웠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하는 그 경기들, 힘든 일은 가능하면 남에게 미루려던 어린 나에게 그것은 협동의 참뜻을 가르쳐 주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일에 미력이나마 다하려는 생각이 다소나마 나에게 있다면, 이 또한 그 운동장의 덕분일 것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그 작은 운동장, 그것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들을 나에게 가르쳐 준 위대한 교실이었다. 

그 운동장은 다만 도덕의 교실만은 아니었다. 그 운동장의 북쪽 둘레에는 어리고 귀여운 손들이 가꾸는 예쁜 꽃밭이 있었다. 거기서는 봉숭아가 피고, 채송화가 피고, 맨드라미가 피었다. 해바라기도 드문드문 노란 얼굴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예쁜 꽃밭에 물을 주면서 생명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 운동장의 서쪽 둘레에는 수십 년씩 된 플라타너스가 띄엄띄엄 서 있었다. 나는 방과 후에 그림자를 길에 늘어뜨린 그 플라타너스에 기대서서 여자 반의 그 예쁜 아이가 운동장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때가 있었다. 싸움을 하고 토라진 우리 반 아이가 웃으며 다가오는 환상을 그리며 서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에 나는 플라타너스 그늘에다 돌조각으로 낙서를 하며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체험하게 되었다. 시험을 잘못 보거나 숙제를 잘 해가지 못한 벌로 청소를 하고, 늦게 돌아가는 날이면, 나는 아무도 만나기 싫어 텅 빈 그 운동장 서성거렸다. 그러다 보면 서산에 저녁놀이 붉고, 때로는 어느 새 별이 뜨기도 했다. 나는 어둠이 깔린 운동장 한 구석의 작은 그네에 혼자 앉아, 아버지와 어머니로도 메울 수 없는 고독을 맛보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그 작은 운동장, 그것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고운 정서를 나에게 길러 준 자상한 교실이었다. 

그 운동장을 생각할 때에 잊을 수 없는 것은 역시 가을 운동회이다. 푸른 가을 하늘에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운동장 가엔 마을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하얀 바지를 입은 여선생님의 오르간 행진곡은 확성기를 타고 운동장 가득히 흘러넘쳤다. 우리는 그 운동장에서 매스 게임을 하고, 경주를 하고, 기마전을 벌였다. 그것은 그 동안 배워 온 질서의 아름다움, 공평한 경쟁의 떳떳함, 협동의 미더움을 드러내는 즐거운 잔치였다. 나는 그 가을 운동회의 경주에서 2등을 하고 뛸 뜻이 기뻐한 일이 있다. 기마전에 나아가 단 한 기도 쳐부수지 못하고 침몰했을 때에는 또 얼마나 허무했던가? 어느 새 나의 작은 가슴도 희비애환을 알 만큼 자랐던 것이다. 

운동회 날의 점심시간은 참으로 풍요했다. 나무 그늘에 두 집, 세 집이 함께 음식을 벌여 놓고 청순 백군 할 것 없이 서로 나누던 정다운 모습, 사람은 서로 경쟁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산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던 그 아름다운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그 작은 운동장, 그것은, 이렇게 우리의 도덕적, 정서적 성장을 확인해 주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지게 한 존귀한 교실이었다. 

오늘도 나는 연구실의 창가에 서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세상에 대하여 다소나마 도덕적 관심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과히 비뚤어지지 않은 정서를 가지게 된 것, 이따금이나마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살게 도니 것도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물론, 나는 어떤 도덕적 결단에 있어서 용기가 없다든지, 감동적인 사물에 대하여도 아무런 정서적 반응을 나타내지 못하다든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협소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힌다든지 할 때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 그 운동장의 가르침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가르침을 온전히 간직하지 못한 나의 결함에 말미암은 것이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며 내려다본 운동장에는 차차 석양빛이 물들고 있었다. 옛날 그 운동장의 플라타너스들이 그림자를 기게 늘어뜨릴 그런 시각이었다. 어떤 아이가 또 플라타너스에 기대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