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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느린 기차를 타고 / 고희숙

느린 기차를 타고 / 고희숙

 

 

 

아이들과 밥을 먹었다. 우리 형편으로 과하다 싶을 만큼 거한 가격의 음식점에서 거기에 덧붙여 봉투도 받았다. 두 세 벌의 옷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는 두툼한 액수다. 어미의 생일 기념이란다. 입에 떠올리기도 민망한 갑년의 축하금이다. 나이 먹은 게 자랑도, 축하받을 일은 더더욱 아닐진데 아마도 위로금이리라. 비싼 밥을 먹고 주머니가 두둑해도 즐겁지 않으니 무슨 심사일까.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하던가. 육십 고개를 채웠으면 살만치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지 싶다.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육십이라니. 육십을 넘기면 세월이 급행열차를 탄 듯 빨리 지나간다고들 한다. 심지어는 오십은 오십 킬로, 육십은 육십 킬로, 칠십은 칠십 킬로의 속도로 달려간다 하지 않던가.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나온 말일게다. 지금껏 돈도 받지 않고 급행열차의 구석자리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뒤늦게 돈도 받지 않고 급행열차를 태워준다는데 하나도 달갑지 않으니 어쩌면 좋으랴.

고등학교를 고모네 집이 있는 도시로 진학했다. 거리도 멀고 도(道) 가 다른지라 직통으로 왕래하는 버스가 없어 늘 기차를 이용했다.

내가 자란 고향은 칠십 이 길의 비포장도로에 버스를 타고 나가서 다시 기차를 타야하는 산골 마을이었다. 지금이야 서울과 부산이 일일생활권으로 변한 지 오래되었으니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나 다름없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고 당일로는 힘든 거리였기에 연휴가 되어야 집엘 갈 수 있었다.

어느만치 연휴가 있다 싶으면 한 달여 전부터 짐을 싸고 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기차시간이 아직도 멀었는데 대합실 구석자리에서 개찰구만 뚫어지게 바라보다 문이 열리면 쏜살같이 달려갔다. 당연히 좌석권이 없는 완행열차만 운이 좋으면 자리도 있었다. 우렁찬 기차소리를 울리면서 기차가 출발하면 벌써 고향 언저리라도 다다른 듯 가슴이 두근대곤 했었다.

된장국과 김치뿐일 밥상이겠지만 눈에 선했다. 엄마의 손길이 그리운 탓이었으리라. 점심을 거른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배가 고프지 않다고 도리질을 했었다. 열차가 정지를 할 때면 뛰어내려 달리고 싶을 만치 마음이 급한데 어느 땐 한참이나 서 있어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방송으로 알려주는 배려 같은 것은 감히 기대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저쪽 선로에서 푹푹 거리며 고급스러운 모양새를 한 다른 기차가 쌩하고 달려가면 그제야 할게 된다. 급행을 보내려고 그랬던 걸을.

막 꿈을 키우기 시작한 순박한 소녀가 대도시 바람을 타고 처음으로 배운 것이 부끄럽게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였다. 대단한 사람들이나 타고 다닌다고 생각하였던 급행열차. 처음으로 배웠다는 게 고작 아래를 내려다보는 겸ㅂ손은 모르고 고개 빠지게 위만 쳐다보는 교만을 배웠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요즘 들어 가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살다보니 내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 싶어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며 살랑살랑 웃음을 짓기도 했었다.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 신기해 가슴에서 솜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옷섶을 여미며 비행기 날개 아래 흘러가는 구름에 넋을 빼앗기곤 했다. 그름의 모습이 마치 바다에 얼음조각이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자신이 얼음매를 타고 먼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가는 만화 같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또 하늘을 나는 신선이 된 것 같기도 하였다면 웃는 이가 많으리라 완행열차의 구석자리가 언제나 내라리고 여기며 살아왔던 내게 비행기를 타고 바다건너 여행은 대단한 호사였다.

그런데 참 웃기는 게 사람의 심사다. 몇 번 지나고 나니 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비행기 좌석에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아둔하게도 몇 번 타보고 나서야 알았다. 탑승도 소위 말하는 VIP가 먼저이다. 큰 비행기는 입구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갈리며 철저하게 구분이 된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자리가. 그쪽엔 자리도 널찍하고 텔레비전 화면도 크다.

패키지 여행객 틈에 끼어 있는 난 언제나 비행기 꽁무니쯤이다. 운이 좋아 앞쪽으로 당겨지면 비행기 날개에 가려 또 구름이고 뭐고 보이질 않는다. 내가 내게 핀잔을 주었다. 배부른 소리 하질 말라고, 아이들 키우며 지지고 볶으며 살 땐 언감생심 남의 나라 땅을 밟아 볼 생각이나 하였던가. 비행기는 하늘에서만 날 뿐 나 하고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여기던 게 불과 얼마나 되었다고, 이 나이가 되어도 아래를 내려다보는 지혜를 잊었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빠른 기차를 바라보며 가진 자를 부러워하던 젊음은 이미 가벼렸는데 부슨 욕심이 또 남았을까.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들은 조금 편하게 왔을 뿐이지 우리 모두 같은 시각에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예전에 어른들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밥 세끼 먹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급행열차에 몸을 싣고 달려가던 사람이나, 비행기 앞좌석에서 어깨를 펴고 앉았던 이나 세월을 거스를 순 없는 일이다. 이제 와서 빠르고 더딘 것이 무슨 대수랴.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아니던가. 부끄럽지만 급행열차를 부러워하였던 부질없는 잘못 뉘우치고 있다면 용서받을 수 있으려나. 오늘밤 꿈속에서 혹여 열차의 기관사를 만나면 넌지시 부탁해 보리라. 이제는 느린 기차를 타고 천천히 가고 싶으니 나를 좀 봐줄 수 없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