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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술자리 / 김상립

술자리 / 김상립

 

 

  

어떤 술이 좋은 술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좋은 술자리가 있었던 날은, 그때 마셨던 술의 종류는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아도 술자리에서 벌어졌던  유쾌한 일들은 나에게 뚜렷이 남는다. 아무리 비싼 술을 마셨다 해도 그날의 술값이나 술집의 호화로운 치장보다는 그 분위기가 더 오래 기억되니 이런 현상은 나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직장생활 초기의 내 별명은 ‘한 병 더’ 였었다. 내가 술이 거나해지면 술병에 술이 채 바닥을 보이기도 전에 아예 새 병을 옆에 갖다 놓고 술잔을 권한 데서 비롯된 애칭(?)이었다. 당시에는 젊은 호기를 앞세워 목로주점이 죽 늘어선 골목 초입에서부터 순서대로 술집을 공격하기도 했고, 더러는 몇이 어울려 분위기가 쓸만한 주점이라는 결론이 나면, 선반 위에 올려진 술을 죄다 먹어 치우기도 했다. 그러나 술 마시는 것도 나이 따라 가는지 이제는 주량도, 횟수도 많이 줄어 ‘한 병 더’ 의 추억만이 녹 쓴 훈장처럼 쓸쓸하게 내 가슴에 달려있다. 돌아보면 그처럼 술을 즐겼으면서도   평생을 두고 기억될 좋은 술자리는 별로 만들지 못한 것 같아 후회막급이다.  

나는 포도주나 토속주 같은 술을 좋아한다. 맥주를 많이 먹고 나면 다음날 머리가 몹시 아프고, 양주는 취기가 빨리 돌아 술이 취해가는 은근한 맛을 모르게 되니 싫고, 대중주인 소주는 내 체질에 맞지 않는지 구미가 썩 당기지 않는다. 더욱이 행세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술판을 벌리면 으레 즐긴다는 폭탄주는 나하고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고, 정작 술값보다 부대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그런 곳도 정신적 부담이 싫어서 담을 쌓은 지 오래다. 장소 또한 복잡하거나 요란한 쪽 보다는 가급적 남의 방해를 받지않고 얘기할 수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러다 보니 같이 술 먹는 사람 숫자도 서너 사람 오붓하게 앉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가벼운 유머와 윗트가 곁들여진 정담으로 인하여 웃는 빈도가 잦아지는 자리면 금상첨화라 해야 하리라. 

그러나 세상사가 어디 내 뜻대로만  되던가? 이런 저런 모임이 많아진 현대 생활은 제 뜻과는 무관하게 색깔이 다른 여러 사람들을 함께 모아 놓는 일이 허다하다. 이렇게 여럿이 술을 함께 마시게 되면 술버릇이 고약한 사람, 한 둘은 꼭 끼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재미없는 일이 생기기 십상이다. 

일상이 복잡해진 까닭인가, 살기가 팍팍해져서 일까? 대체로 술자리들이 즐거운 쪽 보다는 거칠고 삭막해졌다. 술에 취하면 평소에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 시켜 동석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상대방의 자존심을 깔아 뭉개고 자기만 똑똑해져 버리는 엉터리 술꾼들이 판을 치는 현장을 자주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이 말할 기회는 팔을 휘저어 막아버리고 혼자만 얘기하는 통에 말을 듣는 재미보다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몇 번 씩 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경우도 빈번하다. 또 그 자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사로운 얘기를 끄집어 내어 언성을 높이고 흥분하여 여럿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고, 덧없이 지나간 옛 일을 자랑 삼아 늘어놓는 사람들이 흔한 술자리가 되어버렸으니 과거에 비해 신명이 많이 줄어들었다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간혹 취중에 상대방이 비밀스러운 속내를 보이면 맞장구를 치는 척 하지만 돌아서서는 싹 잊어주고, 하고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 가슴이 꽉 막혀있는, 그런 사람의 얘기를 성의 있게 들어주는 좋은 술꾼도 있다. 지금의 제 심정도 착잡하지만 좌절하고 절망하는 더 어려운 사람 만나 정성을 다하여 위로하고 격려하는 멋진 사람도, 오랜만의 성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에게 충심으로 축하와 기쁨을 주는 존경할만한 술꾼도 있다. 마음속으로 은근히 그날의 술값을 걱정하며 찜찜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게 된 날, 슬며시 빠져나가 얇은 제 지갑을 털어 먼저 술값을 치러 놓는 그런 사려 깊은 사람들이 아직도 주위에 남아있는 덕분에 그나마 좋은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밥 보다 술을 더 좋아하신 선친께서는 평생을 두고 하루도 빼놓지 않으시듯 술을 드셨다. 특히 술 종류에 관한한 대단한 고집을 과시하여 일생을 소주만 마신 놀라운 기록을 남기셨다. ‘연로하여 독주를 드시면 해롭다’고 순한 술을 사 드리면, 내가 돌아간 후 반드시 소주로 바꾸어서 드셨으니 어찌 더 이상 만류할 수 있었으리요. 술을 마시면 언제나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더욱 낙천적인 처신을 하신 아버지의 술 사랑이 자식들에게 고통으로 이어질 까닭도 없었다. 또 밖에서 술을 드시지 않을 때는 사랑방에서 가까운 친구들과도 자주 술을 마셨는데, 비록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없었어도 언제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차고 넘쳐 옆에서 보는 이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술잔이 몇 차례 돌고 나면 대부분 역사 속의 인물들이나 고전(古典)에 관한 재미있는 얘기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고 분위기 따라 즉흥시를 짓기도, 시조 창을 곁들여 은근하게 흥을 돋구기도 했으니 말이다. 늦도록 이어진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고함소리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던 적이 내 기억에는 없다. 여든이 넘도록 상당량의 소주를 계속 드실 수 있는 선친의 건강을 지켜주었던 일등 공신도 다름아닌 좋은 술 자리였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아무래도 최고의 술 맛은 좋은 술 자리에서 나올 것이 틀림이 없을 터. 공연히 비싸고 화려한 고급 술집을 찾으려 애쓰기 보다는 술자리를 격조 있게 만드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쓴다면 아마 환영 받는 사람이 되지 싶다. 다행히 나도 어떤 술자리에 끼이든 동석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술 버릇의 소유자는 아닐 것이라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다. 이런 나의 판단은 내 자신의 술 실력을 믿기 보다는 작고하신 아버지의 술 자리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얼마 전부터 나는 시조창(時調唱)을 배우고 있다. 뒤늦게 이것을 배우고 있는 까닭은 내가 남 달리 소질이 있다거나 시조 창이 가진 여러 가지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덕을 보겠다는 욕심이 앞서서도 아니다. 나도 이제는 잔 잡아 권할 사람이 자꾸 줄어들 나이로 접어 들고 있으니 변하지 않을 술 동무 하나 미리 만들어 두고 싶어서 이다. 달 밝은 밤이나 비오는 늦은 오후에 거실에 앉아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는 앞산을 바라보며 문득 술 생각이 간절하다 하여 홀로 적막을 잔에 채워 처연하게 마시는 장면을 연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나에게 시조창은 오래도록 함께할 동반자로서 또 좋은 술자리를 만들어 주는 친구로서 가장 적격이다 싶어 노력해 보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많이 서툴기는 해도, 숨을 가다듬고 단전에 힘을 모아 높은 소리를 길게 뽑아내며 눈을 지긋이 감노라면 어느새 나는 심산유곡 거친 바위 위에 앉은 한 마리 학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하니 이 아니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