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 / 이은희
주검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깨어나라.’ 고 큰소리로 그의 영혼을 불러 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정녕 세월은 무상하도다. 결국 육신은 그저 거무튀튀한 재로 남을 뿐이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치장한 금장만이 번쩍인다. 내세를 꿈꾸던 자,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녹우가 스쳐 간 박물관의 정경은 더욱 풋풋하게 느껴졌다. 경사진 언덕을 단숨에 올랐다. 지난 겨울 음산했던 벽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얼룩덜룩 그려진 그물망 대신 손바닥만한 담쟁이 넝쿨에 가득 에워싸여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담쟁이 모습은 마치 민무늬를 그리며 흐르는 강물을 보는 듯하다. 내 가슴도 덩달아 출렁인다.
평소에도 옛 그림자를 찾아 박물관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만은 특별했다. 옛 그림자를 향유하기 위한 ‘경주’ 는 머나먼 거리였다. 마침 신라금관이 지방 나들이를 했으니 누군가 내 소원을 들어준 것만 같았다.
신라의 금관을 본다. 눈부신 황금의 나라를 보는 듯하다. 출토된 여러 개의 금관 중 천마총의 금관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 넓은 관태에 세 개의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은 날렵한 사슴뿔과 같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모형은 하늘의 말을 들으려는 듯하고, 가지장식에 주렁주렁 매단 수많은 달개와 어린 태아의 형상인 곱은 옥(曲)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라의 무덤에서 많이 발견되는 옥의 상징성은 역시나 건강, 장수, 생명이다.
금관 아래 전시된 금허리띠도 마찬가지다. 드리개에 매단 숫돌과 족집게는 칠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를 뜻하고, 금망주머니는 질병의 치료를 위한 약(향주머니)이 담겼던 것이다. 곱은 옥은 생명을, 물고기는 식량을 상징한다.
그런데 문득 의심스러웠다. 금관과 허리띠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황금과 장식들을 어찌 머리에 쓰고 허리춤에 달았던가. 이것을 사용했던 선조는 아마도 거구였으리라. 또 다른 대형의 돌무지덧널부덤에서도 금제품이 출토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현세의 삶을 이어 가고픈 영생불멸의 정신은 별반 다름없음이 확인된 셈이다.
진시황은 이집트의 미라나 불로초를 찾아 곳곳에 사신을 보냈다. 영생불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태고 이래 계속되어 왔다. 그리하여 동물 복제 성공에 이어 인간 복제까지 시도하고 있는 현대과학은 냉동인간의 부활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진시황이 갈구했던 것처럼, 아니 선조인 신라인처럼 이루지 못한 영생불사의 꿈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오는 “2005년이면 사람의 몸은 죽어도 정신은 죽지 않는 ‘불멸시대’가 도래할 거싱다.”라고 영국 통신그룹 브리티시텔레콤(BT)의 미래학 팀장 이언 피어슨 박사는 말하고 있다. 덧붙여 “45년 안에 사람의 ‘정신’ 을 기계에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사람이 죽더라도 두뇌 속 정보와 정서는 슈퍼컴퓨터에 저장돼 영원히 살아 남게 된다는 말이다.
또 미국의 한 시설에서 50명의 냉동인간이 부활을 꿈꾸며 누워 있다고도 한다. 공상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다. 냉동인간 보존실 안에 있는 것은 사체가 아니라, 단지 동면 상태에 있는 환자일 뿐이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과연 냉동인간 프로젝트의 원리는 무엇인지. 그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정녕 현대판 미라로 불리는 냉동인간의 비밀이 진실이란 말인가. 내게는 그네들의 말이 그저 얼토당토아니한 헛말인 것만 같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정말 내세의 삶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다시 눈부신 금관을 본다. 진정 천 년을 땅속에 묻혀 있다 세상에 나온 것인가. 믿겨지지 않는다. 문득 고려 학자 길재의 시조가 읊조려진다.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고 그는 망한 고려를 회상하며 옛사람을 그리워한다. 어찌 산천에 변함이 없겠는가. 갖은 풍파에 깎이고 변화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만든 장인은 간곳없고, 그의 얼이 깃든 금관이 남아 내 앞에 있다. 나는 지금 옛사람의 손길에 탄복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시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상품들이 눈앞에 쏟아진다. 어느 것이 새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부활을 꿈꾸는 냉동인간, 인조인간을 머지않아 탄생시킬 과학의 힘도 대단하다. 그러나 순수 작가의 혼을 담은 불멸의 작품인 금관을 어찌 흉내내랴. 흙과 불의 예술, 도예의 장인정신과 같으리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러 갈 작가의 정신이 아닌가 싶다.
겨울이면 박물관 벽엔 담쟁이 넝쿨의 삶의 잔재가 남는다. 동물도 죽어서 가북을 남긴다. 그리 보면 고귀한 인간의 삶은 살아 있는 화석이다. 인간의 삶의 흔적은 정신으로, 문화재로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지 않는가. 금관은 느슨한 내 삶에 경종을 울린다. 나는 누구처럼 영생불사를 원하진 않는다. 그러나 불굴의 정신만은 닮고 싶다. 다시금 내 삶에 혼불을 지펴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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