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공사 / 이정환
아래층 주인남자가 올라왔다. 그는 수리한 지 서너 달밖에 안 되었는데 천장에서 물이 새어 새로 도배를 다 버리게 됐다고 빨리 누수를 막아 달라는 것이었다. 아래층으로 가보니 적은 양이지만 물이 떨어지고 주방 통로까지 괘 얼룩져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반년도 안 된다. 매매가 쉽지 않아 살던 집은 전세 놓고 대출까지 받아 정리하였다. 그래서 생활비 조달 자체가 빠듯하다. 그런데 거절할 수 없는 곳에서 돈을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물이 샌다는데 이를 보수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사 오기 전에 알았다면 누수공사부터 하고 보수를 했을 텐데 도배와 장판가지 다시 해야 한다. 번거로운 것은 참으면 된다. 문제는 공사비가 얼마나 들어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름이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 싶었다. 관리 사무소에 연락해 난방 라인 전체를 차단하고 업자 선정에 나섰다. 전담업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인테리어업체에서 겸하고 있어 찾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견적을 청하였다. 그런데 명답을 골라 한다. 한결같이 누수상태를 보기 전에는 예측조차 할 수 없다는 무뚝뚝한 답변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답답하다. 어디서는 탐지 비용만 40~50만원이 든다며 시작할 때 오란다. 공사비를 알고 대책을 세우려던 것이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장마도 가고 추석도 지났다. 아래층 주인이 다시 올라왔다. 난방을 가동할 시기가 되었다며 빨리 보수를 부탁한다는 재촉을 한다. 그래야 자기 집 천장의 얼룩을 수리한다는 것이다. 고민이었다. 자식에게 부담이 가는 일이 생길 때 보태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나는 빈털터리라 도움을 주기는커녕 매월 일정액의 생활비까지 조달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느닷없이 이런 수리비마저 손을 벌려야 할 형편이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 아이도 그다지 형편이 넉넉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주택부금, 이 집을 사느라 받은 대출이자, 미국 가족의 생활비, 6천만 원이나 되는 자식 등록금, 저희 생활비 등 봉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여기에 천만 원이 엄을 수도 있는 공사비는 작은 부담이 아니다. 안타까웠다.
A는 오래된 업체다. 경험도 많고 주변 아파트에 대한 설비구조도 잘 알고 있지 싶었다. 그래서 이 업체에 공사를 맡기려고 생각하였다. 작은 공사니까 설계나 시방서까지 갖출 필요는 없지만 공사의 범위, 방법, 그리고 금액 등은 합의해야 했다. 그런데 A업체의 사람이 오자마자 승낙도 없이 누수탐사를 시켰다.
“누가 해도 누수탐사는 해야 합니다.”
경우에 어그러지는 처사였다. 그리고 공사비는 메인 파이프를 교체하게 되면 120~130만원이 든다고 했다. 방이나 주방, 응접실에 깔린 파이프의 연결부분 등 누수가 발견되면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에 금액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해체를 해야 금액이 산정된다고 한다. 바가지를 쓰기 쉽도록 꾸며지는 느낌이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업체를 찾았다.
B업체는 타지에서 사업을 하다 이곳에 온 지 3개월에 불과하다. 이곳 사정에 어둡지 싶어 불안하였다. 그런데 누수현상을 살펴본 후 메인파이프가 시작되는 주방과 메인이 들어가는 통로를 살피더니 아래층 누수 천장 부분의 방바닥 장판을 들쳤다. 그리고 바닥의 마르지 않은 습기와 곰팡이를 문지른 후 메인부분에서 새는 것이 분명하다고 단정했다. 메인파이프만 교체하면 깔끔하게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닥은 엑셀파이프라서 부식이 없고 연결부위라면 시공 당시에 하자가 발견되었을 것이라며 메인 강관라인에서 생긴 누수가 분명하다고 했다. 경험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업체에서도 단정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도리어 나를 햇갈리게 하였다.
공사비는 60~70만원이면 된다며, 하자 책임에 대하여 1년이면 족하지 않느냐고 한다. 시공의 잘못은 1~2개월이면 발견될 것이기에 믿고 맡기기로 하였다. 탐지기를 이용해야 찾을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메인 전체를 바꾸는데 왜 그런 절차가 필요한가고 오히려 반문을 했다. 아내는 그들의 과도한 자신감이나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이 불안하였던지, 내게 신중하라고 당부를 했지만 큰 이상은 없지 싶어 공사를 위탁하였다.
60만원으로 정하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벽선을 타고 온 기존 메인을 무시하고 공사하기 쉬운 곳으로 라인을 바꾸고 슬래브가 나올 때까지 팠다. 굴착공사다. 다 뜯고 보니 강관이 심하게 녹이 슬어 한두 곳 땜질로는 누수를 막을 공사가 아니었다. 라인 전체를 잠근 것이 한 달이 되어 가는데 바닥에는 마르지 않은 물기가 남아 있고 까맣게 변한 곰팡이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슬었다. 이를 말려 환경을 정화시킨 것만으로도 공사비를 보상한 느낌이다. 오후 2시 1단계 공사가 완료되었다. 9시에 착수하였으나 한나절에 끝난 것이다. 아래층에서 공사를 지체하지 말라고 두 번째 항의차 방문했을 때만 해도 엄청난 공사비 부담 때문에 밉다고 생각하였는데 우리의 건강까지 챙겨준 고마움에 감사의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60만원으로도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공사였다. 이와 같은 적은 공사를 배도 넘게 부르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물정에 어둡고 나이가 들어 쉽게 넘어갈 것이라고 속였다면 도리가 아니지 싶다.
누수란 제 길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누수현상은 곳곳에서 자주 발생한다. 세금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나눠 먹기 식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많이 개선 되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누수가 흐르지 싶다. 물정에 어두운 내가 하마터면 또 누수를 낼 뻔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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