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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얼음새(복수초) / 김금아

얼음새(복수초) / 김금아

 

 

 

늦은 저녁 마트에 가는 길목에서다. 왠 여자가 토악질을 하며 흐느끼고 있다. 그 곁에 남자도 함께 쭈그리고 앉아 있다. 물건을 사고 나오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옷매무새를 흩어 놓고 서로 껴안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등을 토닥거리고 여자는 남자의 품에 쿡 고개를 처박고 사람이 오가는 길목에서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다.

명절 대목이라 많은 사람이 지나며 멈칫 돌아본다. 그들은 사람의 눈길은 개의치 않는 듯 꼭 부둥켜안고 있다. 보기가 민망해진다. 저쪽 넓은 주차장이나 어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저럴 일이지 싶은 맘이 들게 한다.

돌아오면서도 여러 가지 상상들이 내 발걸음 옮길 때마다 따라붙는다. 왜 저러고 있을까, 실성한 여자는 아닌 듯한데 하는 짓은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혹 그렇다면 불륜의 관계일까. 여자를 껴안고 등을 토닥거리는 폼이 보통 정감 있는 사이는 아닌 듯싶다.

목성균님의 <어름새>란 수필이 떠오른다. 어름새란 눈밭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꽃의 이름이라고 한다.

박 중사가 그의 실성한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언덕 아래서 볕살을 쪼이면서 아내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이북이 고향인 그는 전쟁 때 실성한 여자를 사랑하여 고향도 버리고 사상도 버리고 그 여자를 동냥해서 먹이며 다녔다. 추운 겨울엔 밭두렁이나 담벼락 같은 볕살 좋은 곳에 앉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아내를 끌어안고 토닥이던 모습이 어느 영화의 장면보다 아름다웠단다. 엄동설한을 서로의 체온으로 겨울나기를 하는 그들을 목성균 선생은 어름새란 꽃으로 비유했다.

그들의 모습도 언뜻 그런 생각을 연상케도 한다. 그러나 어름새꽃과는 너무 먼 광경이다. 못 먹는 술을 마셨는지 옷매무새를 다 풀어 놓고 토악질하는 것이나 남편은 아닌 듯한 남자 품에서 무슨 설움이 많은지 사람들도 의식 않고 부둥켜안고 있는 것이 그리 아름답게는 안 보인다. 그러나 한편 생각으로는 뭔지 모를 사연을 안고 몸부림치듯 하는 그들이 얼음 속의 꽃 같은 생각도 든다.

요즘같이 불륜도 불륜이 아닌 것같이 당당해지는 이들을 볼 때면 몸부림치듯 하는 그 울음이 그나마 아름답다는 생각도 든다. 눈물엔 어떤 경위든 거짓은 없는 것이다. 울음 속엔 알 수는 없지만 아픔이 동반하는 것이다. 내일 추석 명절인데 집에 가서 차례 준비도 해야 하며 아이들 먹일 음식 준비도 해야 하련만 그럴 수 없는 곡절이 필경 있을지도 모른다.

명절은 그와 비슷한 곡절이 있는 이들에겐 곤욕스러운 날일 수도 있다. 분주한 명절일수록 외로움을 절실히 맛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평상시에는 별일 아니게 무디게 지나던 일도 오늘 같은 명절엔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는 아픔이 너무 크게 와 닿아 울음을 토악질하듯 토해 내고 싶을 것이다. 아니면 서글픔을 잊고자 술을 먹고 술 힘으로라도 껑충 이 명절을 건너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철학자는 불륜을 가장 아프면서도 달콤한 사랑이라고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고통스러울지라도 그와 같이 달콤한 사랑을 맛보고 싶지 않을까. 다만 도덕이란 봉지로 그런 마음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어떤 노 시인이 그랬다. 가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미치도록 시가 고프고 사랑이 고파진다고. 늙은 것은 서럽지 않으나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 더 서글프다고 했다. 시인들에겐 그 달콤한 고통의 소리가 속 깊은 곳에서 수시로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을 덤벙 뛰어들기는 더더욱 어렵고 힘든 일이 된다. 그것은 자기를 온전히 열어 놓고 사랑이란 감정에 맡겨 거기에 흘러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게 얼마나 큰 고통이 수반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 축면에서 보면 불륜으로 고통받는 여자가 어쩌면 용기 있다고 할 법도 하다. 오열하는 여자를 보듬어 안고 등을 토닥거리는 저들이 세상에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달콤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름새란 가장 추운 눈밭에서만 피는 꽃이라서 아름답다고 한다. 불륜 또한 얼음꽃같이 가장 고통스런 오열을 동반하는 것이기에 달콤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와 같은 사랑은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것도 눈밭에 꽃이 피는 것 같은 이율배반이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꽃은 아름다운 것이다. 동지섣달 얼음 밭에 피어도 꽃은 아름다운 것이다. 불륜 또한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당사자들에겐 눈밭의 꽃처럼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성경에서는 창녀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을 두고 누구든지 죄 없는 자 있거든 나와 돌을 던지라고 했다. 마음으로 죄를 지어도 죄 된다고 했다. 우는 저 연인을 두고 누가 돌팔매질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