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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봄 낚시터에서 / 구활

봄 낚시터에서 / 구활  

 

 

 

 

겨울이 유난히 지루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봄붕어 입질하는 순간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해마다 삼월이면 까맣게 잊고 있었던 ‘봄붕어 당길 맛’ 이 되살아나 햇살 좋은 공후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봄 가을엔 낚시, 여름 겨울에는 등산을 반반으로 겸하고 있다. 그래서 산에 가서도 ‘낚시나 갈 걸’ 하면서 후회할 때가 있고 낚시터에 가서도 특히 입질 없는 날엔 ‘산에나 갈 걸’ 하고 후회하곤 한다. 

우산 장수 나막신 장수 두 아들을 거느리고 있는 어미처럼 갈피를 못 잡을 경우가 왕왕 있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동해안에 가자미 낚시와 황열기 낚시를 대여섯 번쯤 다녀오면 가을 속에 살면서 가을을 느끼지 못하고 겨울을 맞는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낚시대를 접어두고 산으로 떠난다. 얼어붙은 계곡과 눈발 속을 헤매다가도 버들개지가 눈뜨고 얼음장 밑에서 졸졸졸 하고 약한 봄의 소리가 들릴 때는 ‘내가 왜 여기 머물고 있는가’ 고 화들짝 몰라며 그 ‘손 맛’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나의 봄맞이 채비는 몹시 바쁘다.

지난 해 납회 이후 처박아 뒀던 민물대를 손질해야 하고 낚시줄도 새것으로 갈아야 한다. 청주병에 물을 가득 붓고 찌와 봉돌의 무게도 맞춰야 하고 여분의 바늘도 미리 매 둬야 한다. 그것보다 일년에 한두 번 만나는 <떡다리 낚시회>의 회원들에게 시조회 출조일을 미리 귀띔해 주는 일이 더욱 바쁘다. 고등학교 동창인 회원들은 나보다 훨씬 봄 기운에 둔감한 탓인지 전화를 받고서야 “벌써 봄인 갑제―” 하고 긴 겨울의 하품을 전화로 느낄 정도이다. ‘떡다리’란 경상도 사투리로 팔뚝만큼 큰 고기를 이르는 것이다. 우린 이상만이라도 높이 갖자는 의미에서 ‘떡다리’로 명명했을 뿐 현실은 항상 형편없는 조과로 끝나기가 십상이다. 왜냐 하면 회원들은 낚시보다는 친구와 술 그리고 고스톱을 더 좋아하니까. 

<떡다리 낚시회>의 삼년 전 시조회 때 일이다. 봉고 한 대와 승용차 두 대를 동원, 새벽 5시에 해장국집에서 모여 경남 창녕의 장기 늪으로 떠나기로 했다. 장기 늪은 겨울잠을 자고 난 붕어들에게 화신이 가장 먼저 전해지는 낚시터이다. 매년 봄 붕어 입질을 보러 갈 때마다 별로 실패가 없는 곳이다. 나는 계곡에 서나 선정에서나 봄의 기미를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 오로지 봄붕어 당길 맛만 생각해 오던 터여서 흥분이 도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떡다리> 회원들은 낚시대를 들지 않고 온 빈 몸 회원이 삼사 명이나 되었으니까. 더우기 그 중 한둘은 낚시터에 도착하여 정성들여 낚싯대를 펴고 단 한번 지렁이나 떡밥을 꿰어 물 속에 던지는 것으로 그날 낚시를 끝내는 축도 있었으니 명칭이 시조회일 뿐 술 마시기 대회가 오히려 걸맞을 듯싶다. 

한두 마리 미꾸라지가 온 도랑물을 흐려 놓듯 열심꾼들도 결국 한두 시간 버티면 손을 털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떡다리>의 시조회 풍습이다. 술 마시는 팀과 고스톱 팀이 번갈아 가며 찌가 떠 있는 근처에 돌맹이질을 해대니 제아무리 꾼인들 봄붕어 입질을 볼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날 시조회의 조과도 매양 그렇지만 이십여 명의 튀김거리로는 태부족하여 새우 틀에 잡힌 피라미 새끼들이 살찐 붕어를 대신하여 밀가루 반죽을 뒤집어 쓰고 튀김 기름 속에 들어가야 했다. 술꾼과 노름꾼들은 "송어(경상도에선 붕어를 송어라 부름)잡아서 뭐하노, 피리새끼만 잡아도 실컷 묵는데-" 하며 '고'와 '스톱'을 연신 불러 댔다. 

봄붕어 입질도 좋지만 <떡다리> 회원들의 걸죽한 욕맛 또한 일품이어서 봄이 더 짙어지기 전에 시조회를 떠나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