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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자타불이(自他不二) / 청정심

자타불이(自他不二) / 청정심

 

 

 

가족이란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이다. 그래서 이해관계를 넘어서 대가없이 사랑으로 동고동락하는 공동체다. 자식을 낳아 길러 공부시키고 결혼 후에도 잘되기만을 기도하고 자식만 행복하면 따라서 행복해지는 것이 부모 마음인 것을 사람들은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효사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효사상은 아직까지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가족 간에는 어떤 문제로 크게 다투고 나서도 금방 후회가 되고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에는 내가 대신 불행할지언정 가족만은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지 않는가.

남이란 좋은 인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좋을 때는 가족보다 더 좋고 떨어져서는 못살 것같이 다정했던 사이라도 어떤 이해관계에 놓여있을 때나 오해가 생겼을 때는 한 치의 양보도 용서도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가까운 사람이 불행해졌을 때는 같이 걱정은 해줄 수 있지만 그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사심 없이 몇 명이나 같이 기뻐할 수 있을까? 모르는 사람이 고생 끝에 성공한 것은 박수를 쳐줄 수 있지만 옆 사람이 잘되는 것은 온갖 비난과 만 가지 비방으로 헐뜯고 깎아 내리는데 혈안이 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가 크게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이 아닌지….

부처님께서는 쇠의 녹이 내부에서 삭아 끝내는 쇠를 완전히 먹어버리는 것을 관찰하시고 중생의 업도 이와 같음을 말씀하셨다.

다생겁래(多生劫來), 내 형제 부모 안 거친 인연이 어디 있을까. 누구든지 내 가족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며 용서한다면 다툼도 적도 없을 것이다. 베푼 이에게 조그만 오해라도 생기면 ‘내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는 증오의 말이 앞서게 된다. 내가 베푼 것은 그 자리에서 잊어버리고 은혜 받은 것은 영원히 잊지 말라는 말은 정말 명언 중의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음악가 요한 스트라우스 부자의 일화가 떠오른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는 자기와 이름이 같은 아버지를 가졌다. 아들 요한은 어린 아이 때부터 왈츠에 친숙해져 아주 조숙한 천재적 재능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하루는 요한 소년이 새로운 왈츠 곡을 작곡하고 있던 아버지 옆에서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니까 아버지 요한은 작곡을 하다 생각이 막혀 작곡을 멈추고 상당히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아들 요한이 아버지가 더 못 나가던 대목의 멜로디를 잘 잇고 전개 시켜서 아버지에게 주었다.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숙제는 내가 해줄 터이니 그 곡은 네가 완성시켜라.”하고 숙제와 작곡을 바꿔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한 부자지간의 돈독한 관계로 인해서 부자가 모두 세계 음악사에서 ‘왈츠 왕’으로 남게 되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가족 간에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가 예로부터 많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는 충효사상도 건재했고 친구간의 의리도 깊었다. 뿐만 아니라 상전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자식을 대신 바꿔치기 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거꾸로 되어가는 세상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도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스승밖에 없는 것 같다. 앞뒤가 꽉 막힌 삶에서 또 글을 쓰면서 스트라우스 부자 이야기를 실감 있게 아주 먼 기억에서 찾아냈다. 그것은 한 발도 내디딜 수 없는 상황에서 횃불을 밝혀주신 스승님 덕분이리라.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 설 수도 없을 때 은사 스님께 가면 지혜로운 참 방향을 지도해 주셔서 어려운 고비를 이겨낸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친부모님 같이 감싸주시며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은사 스님이 계셔 오늘 내가 행복하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오백생의 인연이 깔려야 그렇게 된다는 말이 있다. 또한 구천생을 한 가족으로 지낸 인연이 있어야 이생의 가족이 되며 만생 인연이 있어야 스승과 제자가 도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가족이나 스승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지 새롭게 인식이 된다. 생물체가 인간으로 환생하려면 팔천사백만 번의 윤회를 거듭해야 된다고 할 때 나의 가슴에 새겨지는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한 긴 윤회길이다. 타인도 타인 나름이다. 나에게 오는 선연은 감사히 받고 악연은 금생의 시련을 통하여 업을 소멸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는 나의 행운에 시선을 끌며 박수를 받는 것보다 잚은 사람들 행운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남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또한 욕심을 버리고 좋은 것을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보다는 내 영혼에 충실하며 떳떳한 삶이 영원한 행복이며 노후를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으리라.

인연법으로 생각해보면 나를 거쳐 가는 티끌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인연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 누군가 나 때문에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곧 보람이 아닐까. 부처님 말씀대로 자타불이(自他不二) 정신으로 지금 이 순갅을 정진의 시회로 전환해야겠다. 자신과 주위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