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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예순 네 살이 되면 / 최재영

예순 네 살이 되면 / 최재영

 

 

 

맑은 하늘에서 난데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어떻게 비를 피할까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지하상가로 통하는 계단이 눈에 뜨였다. 이제는 새로 사야 할 물건도 별로 없어 쇼핑과는 담을 쌓고 살다시피 하고 있는데, 이런 기회에 눈요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가로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샹송이 들려왔다. 나는 이에 끌리듯 음반 가계로 들어갔다.

얼마 만에 들어간 음반 가계인가 음반을 사려고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것저것 꺼내 보다가 문득 노랫말을 알려고 한동안 애쓰던 노래가 떠올랐다.

비틀즈의 일원이었던 폴 매카트니의 노래라는데,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 노래의 일부분을 들었기 때문에 가락이 경쾌하다는 것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예순네 살이 되면…’이라는 조금 예사롭지 않은 그 한 마디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내가 마침 그 나이였다. 그것이 내 호기심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드라마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다음날이면 혼례를 치르게 되어 있는 젊은이가 약혼녀를 만나러 가다가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가 된다. 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청력은 마지막까지 살아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약혼녀는 그것에 매달린다. 약혼자가 유난히 좋아해서 두 사람이 즐겨 들었던 그 노래를 그가 듣고 깨어나는 기적이라도 바라며 그녀는 하루 종일 그것을 들려준다.

그 후 노랫말의 내용이 못내 궁금했다. 비틀즈의 노래이니 쉽게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이십 대였던 60년대에 세계를 뒤흔들었던 비틀즈의 음악이니, 내가 육십 대가 된 이 시대에 그것은 이미 흘러간 노래가 되어 버린 모양이다. 한동안 알고자 하다가 음반점으로 나갈 열의까지는 내지 못하고 시나브로 잊어버린 채 몇 년이 지났다.

음반 가게 주인은 그 노래를 알리라고 기대했지만 그도 모른다고 했다. 찾아볼테니 나중에 한번 들르라는 말을 뒤로 하고 나는 그 곳을 나왔다. 얼마 후에 다시 갔더니 주인이 반가워하며 그 곡을 찾아 놓았다고 했다. 음반을 받아 들고 나니 어려운 수학 문제를 몇 년 만에 드디어 풀어낸 것 같은 성취감이랄까, 그런 기분으로 사뭇 가슴이 뿌듯했다.

1967년에 발표된 이 곡은 폴매카트니가 직접 노랫말까지 붙인 것인데 ‘팝’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노년을 함께하고 싶은 소박한 꿈을 읊은 이 노래는 알고 보니 곡명이 ‘내가 예순 네 살이 되면’이었다.

왜 하필이면 예순 네 살일까? 폴이 열다섯 살 때 써 놓았던 노랫말이라는데, 소년이 먼 훗날 자신이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될 때가 쉽게 상상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의 할아버지가 그 때 64세가 아니었나 싶다. 15세 소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많은 나이라면 자기 할아버지 나이가 아닐까. 할아버지보다 더 늙은 자신은 도저히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으리라.

그는 아내와 함께 평범한 여생을 보내는 예순 네 살이 된 자신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보통 남편들이 아내에게 바라는 것들, 뭐 대단한 것도 아닌, 부부라면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을 늙어서도 함께 하기를 꿈꾼다. 자신이 늙어 대머리가 되어도 “내가 필요할거요?” “밥을 해줄 거요?” “발렌타인 카드를 줄 거요?” 따위를 묻고 있다. 젊은 날의 사랑이 오랜 세월 변치 않기를 바라며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엿보인다. 열다섯 살 사춘기 소년이 사랑이란 그토록 평범한 삶 속에서 꽃핀다는 것을 이미 그때 알고 있었다니 놀랍다.

폴과 그의 아내는 29년 동안 잉꼬부부로 살았다. 하지만 암이라는 병마가 그들의 사랑을 시샘했을까. 그는 아내를 먼저 보내야 했다. 그 후 딸 같은 젊은 여인과의 결혼, 잇따른 이혼과 천문학적인 위자료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의 예순 네 번째 생일에는 자녀들과 손자들이 모여 바비큐 파티를 했는데 ‘내가 예순 에 살이 되면’을 함께 불렀다고 한다. 음정도 틀리고 화음도 맞지 않는 합창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고.

연인들의 ‘영원히 변치 말자’는 사랑의 맹세가 그대로 이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과연 있기는 한가.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하지만 그 야속한 세월이라는 것은 젊은 날의 풋사랑을 이해와 신뢰라는 은근한 정과 끈끈한 유대로 바꿔 놓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혀끝에서 감도는 단맛 대신에 숙성된 깊은 맛과 그윽한 향을 내게 만드는 것은 함께 살아온 세월이다. 더불어 늙어가며 곰삭은 사랑을 가꾸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 그 꿈을 품는 그 자체가 진정한 사랑이라고 행복이 아닐까.

오랜만에 ‘내가 예순 네 살이 되면’을 듣고 있다. “내가 퓨즈를 갈면 당신은 스웨터를 짜고, 정원을 가꾸고, 잡초도 뽑고, 또 드라이브도 나가고, 더 이상 뭘 바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