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風化, 풍동風動 / 김선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제게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나요? 그 말을 평생 위안삼고 살아가게요.”
이 대사의 순정미가 흡인작용을 하는 것일까. 미국의 빅터 플레밍이 1939년에 제작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언젠가 처음 보았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고, 30대에 볼 때는 절제력이 부족한 주인공을 마구 꾸짖어주고 싶었다. 한데 40 후반에 들어선 지금은 이상하게도 여주인공이 이해된다.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 분)의 연인을 향한 대사 한마디에 가슴이 알알해진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감정을 굽힐 줄 모르는 천방지축 스칼렛. 어찌 보면 철없기 짝이 없는 여성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비교적 사랑스럽게 다가오다니. 세월이 내게 선물한 여유 덕인가 싶다. 사랑 앞에 영악스럽지 않아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그녀가 지극히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그 방면으론 너무도 순진무구하여 타 남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 순간순간 위태로운 순정을 발산하는 걸 보며 나는 그녀를 연민으로 보듬게 된다.
남북전쟁 전의 미국 남부. 조지아주 타라 농장의 맏딸 스칼렛 오하라는 빼어난 미모와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청년들의 환심을 샀다. 하지만 애슐리 윌크스(레슬리 하워드 분)에게만 마음을 보낸다. 영국출신 남성 레트 버틀러(클락 케이블 분)가 야성적인 기질로 그녀 앞에 나타나 접근하지만 스칼렛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애슐리가 사촌 멜라니(올리비아 드 하빌란드 분)와 결혼하자 스칼렛은 홧김에 멜라니의 남동생 찰스(랜드 브룩스 분)와 결혼한다. 찰스는 입대하여 바로 전사하고, 그칼렛은 여전히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멜라니는 스칼렛의 감정을 다 읽고도 내색 않는 사람이다.
이후 부모를 잃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스칼렛은 또 다른 남성과 결혼한다. 그러나 그마저 오래 못가고 사별한다. 혼자서 제재소를 운영하며 사업을 하던 스칼렛은 결국 끈덕진 구애를 펴온 부자 레트와 결혼하게 된다. 레트는 다른 사람을 향하는 그녀의 진실을 알지만 결혼생활에서 점차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를 믿고 기다린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남성미 넘치는 레트에 반했다. 야성적이면서도 심술궂고, 그런가 하면 자상하여 사랑하는 여인에게 한없이 헌신적인 남자. 그러나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자꾸만 엇나가는 스칼렛의 마음을 어이 막으랴. 가슴 속엔 오매불망 애슐리 뿐인 것을. 그러한 중에 마음 넉넉한 레트도 질투의 날을 세운다. 그러면서 둘은 갈등의 골이 깊어간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 임신마저 유산되고…. 둘 사이의 딸 ‘보니’가 말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여기서 우리가 전해 받는 메시지는 ‘사랑은 마냥 기다려주디 않는다’이다.
사랑의 전도사인 멜라니가 병으로 사망하며 스칼렛에게 이른 말. 그 말이 많은 뜻을 함유하고 있다.
“애슐리를 부탁해요. 위해주세요. 단 그가 모르게 하세요.”
이 얼마나 어려운 당부인가. 오로지 그 한 남자만을 심중에 품어온 여인에게 당사자 모르도록 위해 주라니…. 맘씨 착한 아내의 죽음으로 무너져 내리는 애슐리를 안으며 스칼렛은 깨닫는다. 이 남자의 가슴엔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진정 사랑해야할 사람이 레트라는 것을. 그러나 때는 늦어 레트마저 그녀 곁을 떠나고 만다. 아이도 태아도 남편도 사라져버린 허망한 시간 속. 무엇보다 허탈한 것은, 그녀가 그토록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서 발견한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유부단한 남성의 대표적인 모습 애슐리. 흑과 백이 선명하지만 사랑을 잘못 짚은 스칼렛. 그녀가 뒤늦게야 참사랑을 깨달았다하지만, 그간 한결같이 흠모해 온 사람과의 관계도 엄연한 사랑의 유형인 것을. 애슐 리가 만약 우유부단하지 않고 쾌활 명료한 사나이였다면 이 영화는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회자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본 사람들은 흔히 논할 것이다. 쾌활한 성격의 그녀가 사랑으로 착각했다가 깨달았을 시기는 모두를 잃어버린 뒤라고. 나도 잠시 이을 어쩌나 하며 후반부를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역시 꿋꿋하다. 열정이 멈추지 않는다. 다음을 생각하며 고향땅을 찾아 떠난다. 아버지가 들려주던 이야기에서 힘을 얻어 ‘희망의 땅 고향’을 떠올린다. 다 잃었다고 낙담하여 주저앉지 않고 또 새로운 축발을 예시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세상일 다반사가 바람과 함께 일어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이성을 향한 사랑이나 소망하는 것에 대한 열병 등이 바람의 세기에 따라 승(昇)하고 쇠(衰)한다. 그렇게 볼 때 스칼렛은 또 다른 바람을 일으키려 출발하는 게 아닌가.
어느 원로문인은 여담으로 이르기를 ‘남성은 바람’리고 ‘여성은 물’이라 했다. 그렇다면 바람은 물을 부르고, 물은 구름이 되어 바람을 일으키는가. 바람이 먼저인가, 물이 먼저인가. 남과 여, 둘 다 바람일 수 있고 물일 수 있다. 풍화, 풍동이다. 즉, 사람의 감정이 바람에 섞여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바람이 사람 몸에 스며들어 뭔가를 부추기는 것. 그것 따라 사는 우리는 모두 바람이다. 이 맛을 상실했을 때는 이미 살아갈 의미를 잃었을 때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은 바람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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