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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누드비치 / 박경대

누드비치 / 박경대

 

 

 

나에게는 묘한 잠버릇이 몇 가지 있다.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는 것이 큰대자로 자는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 양팔을 벌려 손에 무엇인가 닿으면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닌데 왜 그런지 나도 궁금하다. 그러니 나중에 죽으며 그 좁은 관속에 어찌 들어가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더구나 꼼짝 못하게 팔다리를 묶기까지 하니… 그리고 등 밑에 머리카락이나 실밥 같은 것이 한 올만 있어도 그 느낌이 온다. 담요가 엉성하게 접혀진 채로 그 위에서 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는 자다보면 답답하여 잠옷을 벗는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의 합숙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몇 년 전 사우(社友)들과 야외 촬영을 갔다가 산장에서 옷을 벗지 못하고 밤을 보낸 후론 더욱 그렇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너무 예민하다고 나무라는데, 할 말이 없는 나는 예술가라서 그렇다고 낯간지러운 핑게를 대곤 한다.

그러나 아내는 나와 전혀 다르다. 잠옷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외출을 다녀와서 피곤하면 외출복을 입은 채로도 잘 잔다. 잠자리가 좁아도 불편해 하지 않고 요가 반듯하게 펴져있질 않아도 상관없다. 하여튼 깊은 잠을 자는 모습이 나에게는 부러울 정도다.

잠버릇 말고도 민감한 게 또 있다. 목이 불편하여 넥타이는 거의 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만 잠시 매고는 곧 풀어버린다. 반지는 평생 끼어본 적도 없고 목걸이라고는 군대에서 차 본 군번줄이 유일하다. 목욕탕에서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내 목까지 답답함이 전해온다. 근본적으로 구속됨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아이들이 모두 타 도시로 떠나고 아내와 둘이서 살기 시작하면서는 집안에서 속옷 차림으로 생활하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여기가 에덴의 동산 인줄 아느냐 하고 잔소리를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 잔소리도 세월이 감에 따라 차츰 줄어들더니 이제는 말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고 난 뒤, 텅 빈 집을 둘러보며 나는 평소 생각하고 있던 일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것은 하루 온종일 옷을 벗고 지내는 일 이었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짓인지 모르겠으나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인들의 잠버릇 이야기 중에도 누드로 잔다는 사람이 꽤 있었다. 사실 체면을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을 뿐, 생각보다 누드 족이 많을 것 같다. 더구나 집 안 인데 어떠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쨌든 딴 사람이 볼까하여 창에 커튼을 치고 훌훌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거실에 누워 팔 다리를 펼쳤다.

아! 너무 좋았다. 완벽한 해방감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 되었다. 그 느낌은 목욕탕에서 벗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켜 놓은 TV에서는 한 달 일찍 개장한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카메라렌즈는 유독 비키니여성을 쫓고 있었으며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과 어우러져 시원하게 보였다. 저절로 냉장고에 있는 맥주가 생각났다.

사진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보시절, 어느 분야가 나에게 맞는지 몰라 여러 장르의 사진을 찍었었다. 그때 누드 사진도 많이 촬영했다. 사진예술이 빛과 사물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의 표현, 그리고 피사체에 내재 되어있는 갈등표현이라고 정의 한다면 누드보다 더 완벽한 피사체가 있을까.

처음 촬영을 하던 날이 생각난다. 걸친 옷을 거리낌 없이 벗어 던지고 당당히 자신의 몸을 내밀던 모델의 모습에서 부끄러움이나 경박스러움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모델과는 달리 나는 무척 떨렸고 부끄러웠다. 그 여성을 모델이라기보다 아름다운 누드의 이성으로 보았다는, 작가로서의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차츰 마음에 안정이 오면서 냉정하게 누드모델을 피사체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모델 두 명과 동해의 한적한 해변으로 촬영을 떠났다. 음악을 들려주며 포즈가 아니라 자신들 마음대로 움직여 보라고 하였다. 모델들이 물속에서 장난치고,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해변을 달리고, 뒹굴기도 하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얼마나 자유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때 훌훌 벗고 해변을 달려보고 싶었다. 내 몸과 정신을 둘러싼 구속, 체면, 의무 등을 내려놓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를 느꼈다.

누드촬영이 나의 민감한 성격과 조합을 이루어 옷이 귀찮다고 생각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 동안은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여 별 생각 없이 살아왔으나 이제는 아내와 단 둘이 사는 바람에 자유의 욕망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누드비치를 만드네, 마네하고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그 소식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바였으나 요즘은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우리 정서로는 어려운 모양이다.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방송에서 주말이 되면 서해의 작은 무인도에서 올 누드로 이틀씩을 살고 서울로 복귀를 하는 직장인들을 취재한 일이 있었다. 그 사람과 나의 생각이 일치하는 듯 하여 영상을 보는 내내 부러웠다. 그래 무인도를 하나 구입하여 누드비치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다소 황당한 생각까지 했었다.

옷을 홀랑 벗은 채 맥주를 마시면서 바다영상을 보다보니 갑자기 그때 생각이 다시 났다. 조그마한 무인도 하나에 얼마쯤 할까. 돈이 모자라면 회원을 모집하여 회원제로 하면 될 텐데, 해변에 집은 한 채 지어야겠지. 신나는 상상에 한 참 즐거워하는데 아내가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누드비치 사업구상은 그것으로 끝을 내고 속옷을 입고 빈 맥주병을 치우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나의 즐거운 상상이 얼굴에 나타난 듯 아내는 화면속의 해운대를 보며 한 마디 했다.

“왜 실실 웃소? 어디 방송에서 누드비치라도 나옵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