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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징소리 / 마경덕

징소리 / 마경덕

 

 

 

 

머구리배는 멍게나 해삼 전복 등을 채취하는 잠수부들이 타는 작은 배인데 펌프질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았다. 당시엔 산소통이 없었기에 배 위에서 호스를 통해 연신 펌프질하듯 산소를 물밑으로 보내주었다. 펌프질을 게을리 하면 잠수부가 위험하기 때문에 대부분 가족끼리 일했다. 전복이나 해삼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게 본업이었지만 가끔 물에 빠진 시신을 인양하기도 했다.

고기잡이가 생업인 어촌에선 과부가 많았다. 태풍에 자식과 남편을 잃은 젊은 여인들은 대부분 판장이라고 불리는 어시장에 나가 일했다. 인물이 반반한 여자는 돈 많은 영감을 만나 재취로 들어앉거나 술집을 전전하다 사창가에 팔려가기도 했다. 모두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다. 한 달에 한번 마당이 넓은 집에 모여 술추렴을 하고 낮술에 취해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모두 한이 맺힌 사람들 같았다. 술판이 끝날 즈음 “성님, 성님, 나 어찌 살아요” 하소연하며 우는 여인들이 많았다. 남편과 자식을 바다에 잃은 여인들은 그렇게 울분을 삭이며 살았다.

초등학교도 못 다닌 옆집 언니는 가출을 해서 객지로 떠돌다가 결국 병모가지라는 사창가로 흘러들었다. 병모가지는 사창가를 나타내는 은어인데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들다는 병의 목이라는 뜻이다. 남산동을 지나 교동 나무다리로 들어서면 반라의 여자들이 홍등 아래 즐비했다. 딱딱 요란하게 껌을 씹거나 다리를 꼬고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선창가를 끼고 색싯집이 즐비했는데 항구에 닻을 내린 뱃사람들은 작부들의 젓가락 장단에 밤새 고래고래 악을 쓰듯 노래를 불렀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

 

대개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다들 기약 없는 삶이었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인생이었다. 바다로 들어서면 과연 살아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목숨을 담보로 바다에 뛰어든 사내들은 야생마처럼 거칠었다. 바람을 닮은 마도로스는 훌쩍 왔다 흔적 없이 사라졌다. 대개 하룻밤 풋사랑은 오발탄이거나 불발탄이었다.

뼈가 시리도록 외로운 사내들은 항구마다 애인을 두었다. 사람들은 情이 헤픈 선원들을 뱃놈이라고 불렀다. 부두는 늘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간이역 같은 곳이다.

언젠가 부두에 박힌 말뚝에 앉아 밤에 우는 뱃고동 소리를 들었다. 부- 웅, 부-웅 출발을 알리는 둔탁하고 애절한 소리. 목 쇤 사내처럼 울음를 토해놓고 여객선은 미끄러지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는 가족들, 이별을 아쉬워하는 연인들. 그러나 배는 늘 떠나가고 얼마쯤 뒤따라가던 달빛도 이내 항구로 돌아왔다.

캄캄한 저녁바다로 불빛을 달고 떠나는 밤배. 그 밤배를 볼 때마다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저 바다 건너편에 딴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는 저 배에 몸을 싣고 먼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밤배를 타보지 못했다.

선착장 짠물에 얼룩진 쇠말뚝, 굵은 밧줄이 똬리를 틀고 말뚝의 목을 조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바다가 드나들었나. 끙차, 목에 밧줄을 휘감고 버틴 시간이 얼마인가. 투두둑 바다의 힘줄을 끊어먹은 말뚝 모가지가 수평선을 향해 늘어져있다.

녹이 슨 밑동. 벌겋게 흘린 눈물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밧줄, 단숨에 바다를 둘러매던 그을린 팔뚝, 노을에 젖은 만선의 깃발, 말뚝에 마음을 묶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철썩, 포구가 몸을 뒤트는 순간 말뚝의 영혼이 새어나간다. 수많은 이별을 치르는 동안 말뚝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선창가 말뚝에 걸터앉아 떠난 사람을 생각한다. 말뚝 뽑힌 자리, 깊이 파였다. 나를 맬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