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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가을 준비 / 유가형

가을 준비 / 유가형

 

 

자연은 가을준비에 바쁘다. 지난 8일이 가을의 문턱에 든다는 입추다. 그래서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이 까슬까슬하고 상큼하다. 후덥지근하고 끈적거리는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가 많았던 여름이다. 뜨거워진 논의 물을 먹고 벼들이 자라고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연어가 거센 물살을 헤치며 회귀하여 알을 낳고 죽어가는 것처럼 모든 생물들은 거친 물살 같은 여름을 잘 견뎌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익기 위해 살을 채우며 대롱거리는 탐스러운 포도를 보라. 한여름 따가운 햇볕을 많이 받아야 빛도 좋을 뿐 아니라, 당도가 높아서 상품 가치가 높다. 모든 과일이나 산의 열매도 같을 것이다.

때로는 태풍과 폭풍우, 천둥과 번개가 하늘을 쩍 가르며 벼락이 내려치고, 홍수와 산사태로 가족과 가재도구들을 잃는 경우도 있다. 슬픈 일이다. 이재민이 발생하는 불운도 있다. 그렇다고 좌절할 수는 없다.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가슴 벅찬 수확의 계절, 가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지치고 피곤해도 학교 공부는 물론, 이곳저곳 학원을 넘나들며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튼실한 열매를 맺고 크고 좋은 것으로 수확하기 위해서다. 매미가 7년이나 흙 속에 묻혀있는 것은 여름날 7일을 울기 위해서이고, 꽃이 아름답게 피는 것도 꽃이 진 뒤의 소중한 열매 때문이리라.

얼마 전 TV에 소개된 미국 에어리어 공대 신입생인 부랜든 왓킨슨이라는 농구선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손도 기형이라 손가락이 세 개 뿐이다. 또 두 다리를 절단한 농구선수다. 저런 몸으로 농구를 할 수 있다니! 이를 보고 미국의 전 사회가 울었다고 한다. 인간승리의 표본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손가락 네 개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룬 희야도 그렇다. 희야의 손을 꼭 튜립 같았다고 회고했던 그 어머니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거나, 희야가 쨍쨍하고 습한 그 여름을 견디지 못했으면 피아니스트라는 값진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누구든 삶이 그렇지 않은가?

질척거리는 여름, 수많은 개울을 건너고 진흙더미를 건너오느라 얼마나 많은 수고들을 했을까? 그렇다고 모두 성공이란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몰입해 열심히 건너왔느냐에 따라 상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빛나는 것들의 공통점은 자기 나름대로 시련을 겪으면서 그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어려운 조건을 딛고 성공한 그들이 지나온 여름의 시기를 생각해보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 심신이 건강하고,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눈과 귀가 보이고 들이는데 이 여름을 견디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 며칠의 열대야쯤이야 그들이 겪은 고통의 몇 백분의 일이라도 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곧 말복이고 오는 19일이 칠월 칠석이다. 까막까치가 오작교를 놓고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이야기를 여름에 끼워놓은 이유가 여름을 지나면서지친 마음을 즐겁고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닐런지? 여름이 가슴 아픈 고통이나 시련도 가을이 오면 그리워지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연탄과 다이아몬드는 완벽하게 똑같은 소재다.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연탄은 도중에 시련을 멈추었지만 다이아몬드는 닥쳐 온 시련, 즉 필요한 시련을 계속 견뎌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몸소 시련을 견디며 이겨낸 자라야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영롱한 빛을 낼 것이다. 휴가철을 제외하고 긴긴 여름을 열심히 일한 우리들처럼 자연도 가을 준비에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