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강호형
새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꿈만 연달아 꾸던 때가 있었다. 나중에는 생시에도 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많이 꾸었다.
꿈 속에도 애환은 있었다. 고도나 방향이 마음대로 조절될 때는 기분이 좋고 그렇지 못할 때는 애를 먹었다. 강 건너고 산도 넘어,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때나, 만원사례의 야구장 상공을 유유히 떠돌며 양편 덕아웃까지 엿볼 수 있을 때의 기분은 날아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꿈보다는 불쾌한 꿈이 더 많았다. 사나운 개나 무장한 괴한에게 쫓기면서도 고도를 높이지 못해 잡힐 위기에 놓이거나, 마음 먹고 비상했다가 고압 전선에 걸려 추락할 때는 진땀이 났다.
나이가 들면 꿈도 주는가 싶다. 한때 연속극처럼 꾸던 이런 꿈도 언제부턴가 꾸어지지 않더니, 그런 꿈을 꾸었던 기억조차 희미해진 최근에 비슷한 꿈을 또 꾸었다. 아마도 그 무렵에 읽은 천문학 서적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神과 天文學』 (R.쟈스트로우 저, 조경철 역)이란 책에는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허블의 우주 팽창 이론이었다. 허블의 관측에 의하면 우주에는 10억 개가 넘는 성단(星團)으로 이루어진 은하계가 여러 개 있으며 그것들이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팽창 속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가령 1백 개의 의자가 1m 간격으로 놓여 있다고 하고, 그 간격을 2m로 넓히면 기준이 되는 의자와 바로 옆 의자의 간격은 2m로 벌어지는 데 불과하지만, 백 번째 놓인 의자는 200m 밖으로 달아나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원리가 1억 광년 혹은 10억 광년 밖에 있는 물체에 정용되었을 때의 멀어져 가는 거리를 상기시킴으로써 그 속도를 설명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허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어느 별 하나가 1억 광년 밖에 있다고 하면, 그 별에서 발사한 빛이 우리의 눈에 도달해 형체를 비치기까지는 1억 년이 걸렸을 것이므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별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1억 년 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별도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보이는 별은 이미 그 수명을 다하고 사라져 버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따라서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물체의 허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다가 옥상으로 올라가 새삼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는 별들 ―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나 자신도 혹 그런 존재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그 날 밤이었다.
나는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고도나 방향이 마음대로 조절되어 기분이 좋았다. 정겹게 자글거리는 도시의 불빛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유영하던 어느 한순간, 나는 엄청난 돌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내 몸뚱이는 맹렬한 속도의 상승기류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날려가고 있었다. 한 번 제어력을 잃은 나의 몸뚱이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삽시간에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었다. 발버둥을 쳐도 소용 없고 소리를 지르려 해도 목이 트이지 않았다.
― 나는 이제 우주의 미아가 되는구나.
그러나 꼼짝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모했다. 차라리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자 집이 그립고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지구의 어느 구석에라도 떨어져만 준다면 일 년을 걸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리라. 억울했다. 슬펐다. 나는 말할 수 없이 고독했다.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정신을 가다듬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틀림없는 우리 집 안방이었다. 잠든 아내의 손을 잡았다. 까닭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나는 지금 노부모의 병실에 있다. 오늘로 20일째 이 방을 지키고 있다. 90세와 75세의 노부부가 마주보고 손을 맞잡은 채 잠들어 있다. 생모가 돌아가신 지 오 년 후에 두 분이 만났다. 두 분 모두 위독한 상태였는데 이제 한 고비는 넘긴 것 같다. 40년 해로면 정도 깊었을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손을 맞잡은 모습이 눈물겹다. ― 同行.
또다시 우주의 미아가 된다 해도 동행이 있으면 덜 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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