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 / 김용구
언젠가 경주 토함산으로 해돋이를 보러 갔었다.
불국사 앞에서부터 미명의 산길을 더듬다시피 올라갔다. 동틀 새벽을 맞으러 가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앞뒤로 들으면서.
석굴암 앞 평지에 다다랐을 무렵까지도 어둠이 깔려 있었다. 거기 많은 사람들이 동쪽 바다를 내다보며 해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새벽맞이를 시작한 걸까. 언제 어디서 누가 먼저 떠오르는 해를 맞은 것일까. 그것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침 햇빛의 광경을 처음 적고 상상력을 다해 해돋이 이야기를 적은 것은 저 古 바빌로니아에서였다. 그때 그 고장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고, 천지에 빛을 발했다…’고 노래했다. 사람의 눈에 비친 새벽 해의 모습은 이와같이 ‘떠오르는 것’이고 ‘하늘에서 땅으로 눈부신 광선을 발하는 것’이었다.
이후 해맞이는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도처에서 약속이나 한 듯 지켜오고 있다.
이 땅의 시인으로 아침 놀과 해의 장관을 노래한 사람은 고운 최치원이 돋보인다. 그는 ‘새벽을 노래한다’는 제목의 산문시를 지었다. ‘멀고 먼 하늘가에 먼동이 트이고… 온누리 깨끗하고 천지는 밝아 푸르고 아득하여…’라고 읊었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붉게 물든 수평선이 온통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늘이 점점 붉어지더니 이윽고 바다 저편에서 거대한 둥근 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새벽의 장관!
나는 숨도 쉴 수 없었다. 찬란한 태양의 신생을 지켜보며 나는 마음에 빌었다. 가족, 친지, 나라 그리고 사해의 형제 자매 모두의 안녕과 평화를. ‘찬란한 새벽 해여,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잠깐 사이 해는 하늘을 물들이며 떠올라가고 있었다. 침묵과 탄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에서 말뚝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가장 장엄한 해돋이였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새벽이었다. 동창 밝으면 새로운 다짐에 서명하는 시각이라고 했는데, 이후 그 새벽이 나의 삶에 가져온 새로운 의미는 측량할 수 없다.
토함산 꼭대기의 그 아침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깊은 의미를 갖게 된데는 참으로 좋은 분들의 동행 덕분이었다. 아동문학가 마해송, 소설가 최정희, 언론인 오소백, 마을문고 운동가 엄대섭의 이름들이 떠오른다. 다른 몇 분들과 함께 그때 나도 경주행에 합류하여 새벽 토함산에 오른 환희를 가졌다. 전국에 마을문고운동을 벌이고 있던 엄회장의 주선으로 경주 여행이 마련됐는데, 육십년대 초반이었다. 일행은 불국사를 둘러보고 그 밤을 절 근처의 숙소에서 일박했다. 다른 일은 생각이 나지 않아도, 이튿날 새벽 일출 광경의 감동만은 지금껏 생생하게 떠오른다.
누군가 말했다, 해는 날마다 새롭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날로 뜻있는 삶을 가질 수 있다. 일상보다 각별히 의미 있는 아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가올 새 천년의 아침이라든가.
니체의 책들 가운데 왋?쩄이 있다. 그 제목은 ‘아침 놀’이라 옮기는 게 정확하긴 한데, 그의 사상 전개상 이 책이 저자에게 ‘서광’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세상을 대하는 니체의 눈이 소극에서 적극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하는 길목의 팻말이라고들 한다. 이 책의 속표지에는 저 인상적인 옛 말이 적혀 있다.
‘아직 동트지 않은 많은 새벽이 있다.’
생각할수록 뜻깊은 말이 아닌가. 인도 고대의 찬가 왆?留4?에 적혀 있는 것이라 하는데, 이 사상가의 펜으로 흘러나와 널리, 특히 20세기에 유포되어 유명해졌다.
해가 날마다 새롭다거나 또는 동트지 않은 새벽이 많다거나, 그것은 다 우리 나날의 삶에 의미를 더해 주는 고마운 사상들이다.
동트는 새벽이 모두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 줄 것을 바라며, 나는 이 전갈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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