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비 / 정임표
겨울비가 온다. 환율 1,500원 돌파, 코스피 지수 1000포인트 붕괴. 상아탑은 대출탑. 다단계 4조원 대의 피해. 돈이 우리를 얼마나 춥게 하였으면 LPGA에서 우승한 신지애가 달러를 한 아름 안고 있는 사진이 저녁신문에 실렸을까.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던 까만 교복을 입은 과수원집 딸 정희가 생각난다. 다 찢어진 우산을 빈틈없이 꿰매어 돌려주던 부산 세관 여구과에 근무하던 마음가짐이 단정하던 아가씨도 생각난다. K선생으로부터 플라타너스 젖은 잎들이 춥지 않겠느냐는 메일이 왔다. 좀 더 세월이 지나서 내 마음에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나는 또 K선생이 생각날지 모르겠다.
같이 퇴근하던 J가 우산을 씌워준다. 나에게로 다 씌워주고 자기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 팔이 아플 것 같아서 내가 받아 쥐었다. 둘이 쓰는 우산은 늘 나보다 남을 더 많이 가려준다. 세월이 한참 더 지난 후 겨울비가 내리면 나는 또 J가 생각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분홍빛 우산이 자그마하다. K도, J도, 신지애도 모두 작은 분들이다. 젖으면서 가려주는 우산 같은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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