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한 송이 / 변해명
목련꽃은 눈부신 개화와는 달리 너무도 절망적인 낙화의 모습을 지녔다.
이른 봄 어느 나무줄기도 개화를 꿈꾸지 못하고 있을 때 홀로 마른 가지에 꽃눈을 틔우고 기품 있는 자태로 피어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내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한다. 다른 나무의 어느 꽃도 흉내도 낼 수 없는 크고 우아함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그 꽃잎이 질 때에는 어찌 그리 야속한지. 떨어져 누운 모습은 남루하고 추하다. 흰빛조차 잃고 병든 모습으로 시들 줄도 모르고 오래 머물러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벚꽃처럼, 배꽃처럼 꽃보다 아름답게 떨어져 내릴 수는 없는지. 그 꽃들처럼 피어날 때 아름다움을 낙화에서도 그대로 지니고 맑고 투명함으로 질 수는 없는 것인지. 낙화로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땅위에서 더욱 안타깝다.
목련꽃의 그런 양면이 어쩌면 내가 목련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되는지 모른다. 피어나는 목련꽃의 눈부신 아름다움만을 사랑한다면 어찌 목련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말 할 수 있으리. 도리어 아프게 지는 모습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그늘이 되어 봄의 끝자락에서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주기에 진정 연연한 사랑을 보내게 되는 꽃인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목련꽃 같은 여인의 이야기로 가슴을 앓고 있다. 너무 일찍 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목련꽃 한 송이.
어느 날 B씨가 내게 읽어보라며 일기 한 권을 내밀었다. 병상의 아내를 지키며 쓴 3년간의 일기라고 했다. 나는 그 일기를 대하며 봄의 끝자락에서 꽃잎을 떨어뜨리는 목련꽃 한 송이를 떠올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결코 헤어날 수 없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곁에서 절망과 좌절,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을 보듬으려는 노력이 눈물겹게 담겨 있는 일기. 그에게서 아내는 아직도 피어나는 한 송이 목련꽃임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에 그의 가슴은 절절한 슬픔으로 넘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 내 반쪽이 병이 들었으니 나는 지금 반신불수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일기는, 58세에 치매환자가 되어 버린 아내의 원망스런 기록이다.
5년의 세월을 함께 아파왔다. 2년은 손목을 잡고 함께 다니면서, 1년은 같은 병상에 머물면서, 그리고 2년은 전문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지켜보며 너무도 변해가는 모습에 통곡하는 순애보이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만 그런 불행이 닥쳤는지 원망과 갈등과 고통으로 견딜 수가 없었지요. 그토록 아름답던 아내 모습이 너무도 추한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에 견elf 수가 없었어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비극이지요.”
그는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일기를 책으로 만들 때 책의 삽화를 넣겠다는 사진을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세계여행을 함께한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이 사진마다 담겨 있었다.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에 악마의 질투를 받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실감이 날 정도였다.
“세상에는 그런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이 많을 거예요.” 그의 아픔은 치매에 시달리는 아내보다 더 큼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밖에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함께 고통을 겪고 있지요. 그것을 알기에 함께 아픔을 나누고 싶어서 이 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은데 자식들이 반대를 해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는 게 싫다나요?”
병든 아내를 포기하지 않고 건강할 때보다 더 곁을 지키려는 절절한 사랑과 그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그의 눈물겨운 노력이 자식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 같았다.
“왜 하필 내게만이, 우리 가족에게만이 불행하게 되었는가라는 생각에서 누구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고 싶은데.”
그래서 그는 내게 자문을 구하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환자들은 그들의 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음으로 병의 고통으로부터 쾌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육신은 병들었으나 그들의 영혼만은 곁코 병들지 않았다는 신념을 지키고 싶음에서.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가 쓴 일기 속의 시 한 구절을 읽었다.
주요! 비옵나니
믿음 약한 저에게 믿음 주시옵고
의심의 구름 걷히고
밝은 태양이 바라보게 하옵소서.
이 어려움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하게 하여 주시고
마음의 평안을 주시옵소서.
찬미 할 수 있는 순간 순간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비옵나니 긍휼을 베푸소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내의 아름답던 모습, 그와의 행복했던 시절을 포기하지 않도록 신앙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있다. 지금 그의 마음에는 분노도 억울함도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초월할 평온함이다.
나는 B씨와 헤어지면서 겨울 뜰에 빈 가지로 서 있는 목련나무를 생각했다.
이 봄에도 목련은 피어날 것이다. 너무 아름답다고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지 말 것이며 지는 모습이 너무 추하다고 외면하고 돌아설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 모두 아름다운 모습이 언제고 돌아설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 모두 아름다운 모습이 언제고 추함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아름다움만을 아름답다 하지 말고 추함을 가슴에 품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승화시킬 일이다.
그래서 목련은 그런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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