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Back Lane / 김영미
새해를 맞은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벌써 달력을 석장이나 넘겼다.
초등학교 적에 봄, 가을 소풍을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 첫 데이트에 가슴 부풀어 그 날을 고대하던 날들과 오늘을 생각하면 정녕 반비례되는 달력이다.
삼월에 들어서면서 기온 상승의 변화가 약간 있었지만 구름이 빛을 가릴 때면 영락없이 찾아드는 저기압 상태와 또 다시 씨름을 해야하는 현실을 지각하면서 친정 어머니께서 손수 타서 보온병에 넣어주신 향긋한 커피 냄새에 침울함을 애써 떨구어버리고 일터를 향해 달렸던 오늘 아침, 남들보다 조금 서둘러 시작한 하루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길을 나서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저마다의 까닭모를 분주함이 이른 아침부터 도로 위에 지그재그 줄달음 치고 있었다.
성질 급한 나보다 더 급한 이는 ‘빠앙 빵!’ 고래 고래 소릴치며 무서운 인상으로 손가락까지 치켜올리고 급속도로 질주를 하는가 하면 그러는 그를 보고 유리문을 내리고 온 세상을 저주라도 하듯 내뱉는 저속한 언어들이 차창을 세게 때리고 도로변 양쪽의 미맹한 허허벌판에 흩어졌다.
오늘따라 일터에 도착을 하니 예상치 못한 renovation으로 왜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였는지… 아마도 schedule이 변경된 모양이려니 생각하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내가 맡은 일에 충실하려 노력해 보았지만 산란한 마음을 다독거릴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일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대도시에 비하면 그다지 복잡한 거리는 아닐테지만 오늘따라 내겐 더 더욱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시가지를 벗어나 highway로 들어서려다 차를 돌려 한적한 back lane, 시골길을 택했다. 이따금 농부들의 주택이 몇, 몇 채 눈에 띄일 뿐, 오고 가는 차량도 아주 드문 길이었다.
처음엔 참! 한유한 길이라는 느낌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얼마를 달렸다. 외딴 농가에 전선을 이어주고 있는 오래된 통나무 기둥의 전봇대가 어쩐지 힘에 겨워보였다. 그런대로 세상에 모든 것들을 떠나 홀로 있고 싶은 심정에 적합한 정경이었다. 얼마간의 평온함, 아주 좋았다. 한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고요하리만큼 고독한 주위에 도취되어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삐입!’ 하는 소리에 복잡한 현실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Low fuel 의 신호였다. 가던 길로 계속해서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갈림길에서 우회전을 하여 마을을 향해 달렸다.
마을 어귀에 접어들자 사람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조금전 까지만 해도 진저리를 내던 냄새가 금새 왜 그리 정겹든지…
차에 gasoline 을 넣고 집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이 인간관계를 떠나서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잠시, 아주 잠시 동안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일 수록 더 더욱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밀접한 인간관계임을 새삼 깨달았다.
매일 매일 부딪치는 현실을 도피하여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나면, 또 다시 그리워지고 다시 찾게 되는 것, 어떠한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에 우리들에게 꼬옥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인간 관계인 것이다. 비록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이글거리는 분노가 치밀어 내뱉은 한 마디가 많은 상처를 남겼을지라도 또 다시 부드럽게 엉기면 사글어질 수 있다. 하지만 서로 가 외면한 채, 영영 등을 돌리고 돌아서버린다면 평생토록 무거운 앙금으로 남아 괴롭고 고달플 것이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우리들이 몇 일 전에 넘긴, 달력이 넘겨지는 속력은 점, 점 빨라지면 빨라지지 절대 늦춰지지 않는다. 달력이 넘겨지는 속력이 급속도로 빨라져, 뇌에 혼동이 오기 전에 좀 더 바람직하고 알찬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보고 싶다. 오랜 세월, 시끄러운 시가지가 짜증스러워 홀로 조용히 있고 싶어 택했던 back lane,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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