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영혼 / 안숙
3월에 폭설이 내려 추녀까지 덮인 눈 사진을 본다. 하얗게 소복한 겨울산이 보고 싶으면 백두대간의 태백산을 생각하곤 한다.
검은 마을. 신혼 시절을 보냈던 탄광지다. 지금은 강원도 삼척과 장성군의 장성, 황지, 철암 등지가 태백시로 승격되었다. 40여 년 전은 청량리역에서 강릉으로 가는 중앙선 기차를 타고 영주를 거쳐 태백준령을 굽이굽이 돌아가 10시간 이상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는 험준한 오지이다.
태백은 땅도 검고 하늘도 검었다. 풀풀 탄 비가 내리고 검정 내[川]가 흘렀다. 맑은 물빛을 모르는 아이들은 도화지에 시냇물을 까맣게 칠한다. 백색이 금기되는 곳, 흰옷을 입을 수 없는 곳이었다.
탄광은 두더지처럼 땅속을 파고 들어가 위험을 무릅쓰고 탄을 캔다. 열악한 광부생활은 불안의 연속이었고 하루하루 가슴 조이며 살아간다. 막장(굴 속)에서 사고가 났다는 말은 곧 사람이 죽었음을 뜻했다. 팔다리가 부러져도 숨을 쉬면 공상公傷이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면 삽시간에 납덩이 공기가 흐르고 모든 것이 정지된다. 구조작업이 시작되어 인부가 들것에 실려 나올 때마다 쏟아지던 처절한 절규는 그곳에 삶의 터전을 둔 모두의 아픔이고 고통이었다. 다음 번은 누구일지 모르는 공포. 눈앞에서 생사가 갈리는 막장 사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면 무엇이라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만큼 절박한 삶을 살아내는 음지의 군상들이라 ‘막장 인생 따라지 인생이라’ 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청정에너지의 편리함에 밀리고 상승노임에 채산성이 떨어져 많은 탄광이 문을 닫았다. 일자리를 잃은 광산 근로자들은 뿔뿔이 타지로 떠나고 힘없는 노약자와 아이들만 남은 마을은 한 집 건너 빈집이 유령 촌으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하나 1970년대는 무연탄 개발정책으로 석탄산업의 최고 호황기를 누리기도 했다. 돈이 있는 곳이면 사람이 모여든다. 전국에서 노다지를 캐겠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80년대까지도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몰락한 탄광촌’을 바라보는 마음은 한 때 주민으로 살았던 삶을 아프게 한다.
남편은 공대를 졸업하고 석탄石炭공사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첫 사회생활을 태백 장성에서 시작했다. 현장반장 직함은 3교대로 막장을 들고나는 생활이었다. 기계처럼 과한 노동 현장이지만 휴일은 한 달에 이틀이 고작. 텔레비전도 없었고 문화생활이나 여가란 꿈같은 이야기로 모두들 두더지처럼 일만하던 시절이다.
이역만리 독일서 뻣뻣한 시체를 닦으며 눈물 흘린 간호사와 지하 천 미터 갱 속에서 목숨걸고 일했던 파독 광부들이 조국 근대화를 앞당기는데 일조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통령이 그들 앞에서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하고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부분에서는 코가 시렸다.
요즈음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어 ‘이태백’이니 ‘사오정’으로. 크게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수많은 시위현장에서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허구한 날 구호만 외쳐되는 그들은 어디서 돈이 나와 불편 없이 먹고사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남편은 눈비가 오는 밤은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겨 입고 한밤중에 현장[막장]으로 나가곤 했다. 그런 밤이면 혹시라도 방심해져 사고가 날까. 저어해서다. 그래서 부서 과장 4,5년 동안 사고가 없었다. 광산에서 무사고는 광부에게나 회사측에 엄청난 고가 실적이다.
우리가족은 10여 년 광산생활을 하고 떠나왔지만 순수 열정으로 일했던 남편의 젊은 시절과 그곳 삶을 잊지 못한다. 거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생존의 현장에서 현실 괴리의 쓴맛을 맛보기도 하고 생활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터득하게도 되었다. 세상에는 수백 종의 직업이 있다. 체험하지 않고서는 그 직종의 어려움을 누가 말할 수 있으랴만 훌륭한 분들의 현시顯示적인 삶은 인생이 장밋빛이기 때문에 광부들의 삶이 더 서러운지 모른다.
겨울자락에 눈 덮인 태백산을 다시 찾았다. 당골에 동양최대 석탄 박물관이 있다. 수직갱, 사갱, 수평갱, 미로 같은 복잡한 갱도에서 더운 김을 내뿜고 땀을 뚝뚝 흘리며 곡괭이로 탄을 캐는 모습. 시커먼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도시락을 먹는 사진들. 광부들의 애환의 발자취를 돌아보니 탄 곤죽이 뚝뚝 듣는 시커먼 작업복을 빨고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몇 개씩 쌓던 기억이 새삼 아려오고. 아이 셋을 낳고 길렀던 초년 시절이 감감하다.
우리가 살았던 석탄공사 사택은 차도 위쪽은 헐려 5층 아파트가 세워졌고 아래쪽은 ‘사계절 회관’ 식당으로 변해있었다. 강산이 서너 번은 변할 세월이니 국토 어디에도 예대로 인 곳이 있으랴만 두메산골까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변모가 금석지감이다.
남편은 요즘 S연구소에서 폐광된 곳곳에 널려있는 지하부존 광맥이나 금맥일지라도 도표를 작성해 후세를 위해 남겨야 한다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석탄은 지난 시절 유일한 우리 나라 부존 에너지 자원으로서 국민생활과 국가 기간산업의 동맥으로 크게 기여했었다. 지금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수입석유에 의존해 편리한 생활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변화된 시대상을 반추하게 된다.
누가 무어라 해도 60년대 산업역군의 희생과 피땀어린 숭고한 정신이 조국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도 귀족 근로자 말고 음지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하는 산업근로자에게 더 큰 파이가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태백은 60년대에도 눈이 많이 내렸었다. 한 발이 넘게 쌓여 몇 날씩 갇혀버렸던 적도 있다. 그곳에 잠들고 있는 회한의 검은 넋들이 순백 눈으로 승화하는 것은 아닌지. 하얀 양지의 삶이 아쉬워 겨울 내내 폭설로 태백산을 덮어 버리는지 모른다.
겨울이면 탄광막장에서 숨져간 혼백이 백색으로 훨훨 날아, 그곳은 땅도 하늘도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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