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비용 / 정여송
사람들은 후회거리 하나쯤 안고 살아간다. 그리할 걸 그랬어, 그렇게만 안했어도, 다른 것을 선택했더라면 하는 후회막급에 대한 아쉬움이다. 강한 것을 잃어버린 후 약해진 마음을 드러내는 고백 같은 것. 잊혀져가는 기억을 지펴내는 작은 향연 같은 것. 그렇게 아쉬움의 크기는 처해진 사정이나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가끔, 결혼을 전제로 퇴직한 직장에 대해 미련을 갖는다. 정신적으로 궁할 때가 그렇다. 아이들은 커 가는데 둘러볼 곳은 많고, 허리에서 휘청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도 그렇다. 길고 가느다란 줄 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곡예사처럼 보일 때면 더욱 그러하다. 이유를 달자면 현실에 대한 초조감 때문이지 싶다. 아니면 삶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애태움일 수도 있다. 어쩌면 힘듦에 항변하는 안에서 새어나오는 절규일지도 모른다. 뜨거운 기운을 받아 몸이 달아오를 만큼의 희망이나, 뒤집어엎을 만큼의 용기는 없지만 엉거주춤 살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덕을 거울거울 넘어가는 옛날이 그리워 까치발을 하고 바라본다.
내가 결혼하던 시기만 해도 대게가 결혼과 동시에 퇴직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직장보다는 평온하고 안일한 가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흐름에 동승하기보다 역류하려는 힘을 지녔던 사람들은 일과 가정생활의 병행을 과감히 이끌고 갔다. 따라하지 못한 나의 선견지명은 보나마나 청맹과니였음이 분명하다.
삶의 순간순간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든 가능성의 장(場)에 놓이게 된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무한한 선택의 기회와 마주친다. 좀 더 잘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 점심을 컵라면으로 대충 때워야 하나, 정식차림으로 배불리 먹어야 하나. 취미일까, 직업일까. 승진이냐, 건강이냐.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일까지 가려집지 않으면 안 된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선택은 이미 창세기부터 에덴동산에서 피할 수 없는 이분법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갈림길에 서서 늘 고뇌하고 갈등한다.
선택의 본질에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는 몫이 있다. 만일 내가 주어진 부식 값으로 책을 산다면 저녁 식탁에 올릴 생선 살 돈이 없어진다. 운동선수가 텔레비전을 한 시간 더 보면 운동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정부에서도한 사업에 대한 예산을 늘리면 다른 사업에 쓸 수 있는 예산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잘 선택하면 하루에 수십 년이 편하고, 잘못 선택하면 그날부터 평생을 어렵게 하는 일들도 무수하다. 힘들게 하는 것은 선택물이든 비 선택물이든 그 무게나 깊이가 까다로워서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거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하고 고민을 한다.
어떤 길이든 간에 묵묵히 걸어 갈 수 있는 마음이면 여북이나 좋을까. <피터 팬>을 쓴 ‘제임스 배리’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사람이다. 운명은 그 뜻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키가 150센티미터 남짓했다. 작위(爵位)를 받고도 아이들과 어울려 해적놀이를 하고 마술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다보니 유명한 희곡작가로 이름은 떨쳤으나 결혼 생활은 불행으로 이어졌다. 당시, 세상을 들썩였던 ‘에드워드 8세’는 어땠는가. ‘파리스’가 황금사과를 손에 들고 어느 여신에게 줄 것인가를 고민하다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듯이, ‘에드워드 8세’는 독신으로 즉위했지만 국왕자리를 버리고 미국 출신인 이혼녀 심프슨 부인을 택했다. ‘파리스’도, ‘에드워드 8세’도 여인을 택한 대가로 권력과 명예의 상실이라는 기회비용을 톡톡히 지불해야 했다.
이야기나라의 주인공도 예외는 아니다. ‘혹부리 영감’의 도깨비들은 좋은 노래가 나온다는 혹을 사기 위해 생활의 양식인 방망이로 값을 치러야 했다. ‘인어공주’ 역시 사랑하는 왕자 곁에 머무르는 조건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놓아야 했다. ‘심청’은 또 어떻고. 봉사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재물이 되었지 않은가.
하나를 선택함으로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기회비용. 따져보면 삶 자체가 기회비용의 연속이다. 그 이론은 물건구매의 경제학 용어만이 아니다. 모든 행동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며, 선택함을 신중하게 가르치는 행동윤리학이다. 포기해야 하는 것의 대가 중 최선의 것이며, 현 시점에서 포기해야 하는 가장 큰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좋든 싫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과거에 고심하였던 선택의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수많은 기회비용을 치른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또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값비싼 흥정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의 선택으로 인해 누구의 삶이 행복한지 아닌지, 누가 많이 가졌고 적게 가졌는지 판단할 수 없다. 부자이면서 황폐하고 가난하면서도 평화로운 사람들을 무수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선책을 통하여 얻는 기쁨이 있다면 열일 제쳐놓고 해 볼 일이다. 선택 없이 양보하고 비우면서 차선책으로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면 그것보다 큰 행운이 있을까. 행운을 안고 바라보는 세상은 훨씬 더 수월하고 아름다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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