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 역에서 / 김영미
신목 역은 9호선 지하철을 타고 내가 사는 염창 역(목2동)에서 내리기 한 정거장 前 아니면 다음이 되는 지하철 역사의 지역명입니다.
나는 도대체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잠으로 인해서 두어 시간 외출이 지나면 정신 병리학 적인 한 증세로 대뇌가 무력감에 빠져버려서 내 임의대로 어찌할 수 없는 잠 속으로 떨어집니다. 집 앞 한 정거장을 남겨두고도 잠이 드는 까닭에 내가 내려야 할 장소에서 제때에 제대로 내려 본 적이 거의 없고 자다가 놀라서 허겁지겁 뛰어 내리고 보면 이미 한 정거장을 지나친 경우 아니면 미리 내려 버린 그런 경우가 비일 비재 합니다.
그날도 잠에서 깨어 놀라 뛰어 내린 곳이 집 앞 한 정거장을 지나친 신목 역 이었습니다.
한동안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하기도 해서 바다 깊이 가라앉은 낡은 나룻배처럼 침전된 사고 속에서 신음했지만 이제는 모든 걸 마음속으로 부터 놓아 버리고‘그럴 수 도 있지’ 생각을 접고 받아 드리기 시작한 터인지라 터덜터덜 오르는 계단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신 목동역은 개발이 추진 중인 가운데 지하철역이 먼저 들어선 지역구의 특성 때문인지 역사 안은 쓸 때 없이 넓어 보이고 언제나처럼 한가하고 조용 했습니다.
계단을 다 내려와 대기 의자에 막 앉으려는 순간 저 만큼 옆에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울먹임에 가까운 전화통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 갚으려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아들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미가 갚아가겠다 하지 않습니까? 한 번에 다 해결해 드릴 수는 없고 분할해서 갚아 가겠습니다. 이동통신 3사에 다 몇 백 만원 씩 걸려 있는데 어떻게 당신네 통신사 것만 해결하라 하십니까?”
가슴을 쓸어 가면서 통화를 끓지 못하는 여인의 모습이 고무판화속에 갇혀있는 여인처럼 어둡고 답답하게 다가왔습니다.
여인의 핸드폰 통화내용을 요약하면 세상물정에 어두운 아들 녀석이 중소기업 사장임을 사칭한 전화사기에 걸려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핸드폰 등록이 허용 되는 두 달 동안만 이름을 대신하여 전화를 개설해 주십사 하는 간곡한 부탁에 자기 딴에는 알아 볼 만큼 알아보고 설마 기업 사장이 거짓말을 하랴 싶어서 인터넷상 싸인을 했다가 이동 통신전화 세 개의 통신사 모두에 자신도 모르는 대포 폰 전화가 한 통신사에 두 대씩 다섯이나 개설 되어 졌고 두 달 만에 수 백 만원의 전화 문자 요금과 단말기 값을 고스란히 떠 맡아야하는 난처함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며칠 전 그와 비슷한 사기전화에 넘어 갈 뻔한 기억이 있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가 않아 유심히 듣게 된 통화내용 이었습니다.
내게 전화를 건 보이스피싱은 서초동 지점의 기업은행 대리 *** 임을 정확히 밣히고 내 주민등록 카피본과 통장을 가진 ***라는 중년의 여성이 현금 900만원을 인출 하려 하는데 고객님의 확인이 필요해서 전화를 했노라고 말 했습니다.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기업은행 대리의 신고로 전화를 했노라고 말하는 강남 경찰서 강력 수사팀 ***라는 사기범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주민등록 열 세 자리 번호도 정확하고 유도심문에 넘어가 정신없이 주거래은행을 바꾸려 은행으로 달려가다가 문뜩 전화를 건 남자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저쪽(연변) 사람들 말투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은행에 있는 청원경찰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그 경찰의 도움으로 긴박한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들의 사기행각에 말려들 뻔 했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여인의 등 뒤로 신 목동역을 서지 않고 통과하는 9호선 급행열차 지나갔습니다.
가방을 뒤져 지하철 승차권을 찾는데 마트에서 원+원으로 판매 되어 사놓았던 바나나우유 두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인은 나처럼 목이 말랐던지 내가 내밀은 바나나우유를 단숨에 마셨습니다.
여인을 위로 한 답 시고 내가 전한 말은 정부에서도 전화사기로 인해 피해를 당한 많은 소시민들을 위한 구제 방안을 마련 중이고 곧 신문발표가 있을 예정이라는 자신 없는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한 것 뿐입니다.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여인의 눈은 "정말 그런 날이 오기는 오는 건가요?"라고 묻는 듯 슬퍼 보였습니다.
잠시 후 보통열차가 도착하여 승차를 하는데 여인은 열차에 타지 않았습니다.
달리는 차 창밖으로 의자에 앉아 다시 휴대폰을 누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정물이 되어 멀어집니다.
여인의 시름은 끝나지 않았고 고해를 하듯 계속되는 여인의 애절한 통화소리는 신 목동역의 메아리로 남을 듯 합니다.
그 누군가가 있어 여인의 시름을 끊어 주고 달래 줄 수 있을런지….
온갖 사연을 담고 서 있는 우체통처럼, 거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이 없는 거목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두 귀를 열고 남의 사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한 신 목동역!
누구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슴 속 후련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 놓아도 소문나지 않는 장소 그 곳이 우리 동네 다음 역 이거나 한 정거장 전인 이웃 역 이어서 참으로 위안이 되는 그런 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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