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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끈 / 정상규

/ 정상규

 

 

 

손자 준후가 태어났다. 밝은 빛을 한껏 누리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으로의 초대에 축복을 느끼면서 살면 좋겠다. 부모든 조부모든 조상 된 이라면 누군들 이런 마음이 아닐까.

병원에서 준후의 ‘태’ 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보관료가 제법 비싸다. 장차 생길 수도 있는 질병 치료를 위한 줄기 세포이기 때문에 비싸도 마다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라고 한다.

‘태’ 의 사전적인 설명은, ‘새 생명체를 싸고 있는 난막(卵膜), 태반(胎盤), 탯줄을 통틀어 이르는 말’ 로서, 모체 안에 있을 때 성장에 필요한 모든 정서적 물리적 자양분을 제공해 주는 종합 시스템인 셈이다.

레너드 쉴레인이 쓴 책 『지나 사피엔스』를 보면 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들을 얘기하고 있다. 대다수의 포유류 어미들은 태반을 먹는다고 한다. 이 분야의 몇 몇 학자들은 어미가 재빨리 태를 먹는 이유가, 그 냄새로 맹수들이 새끼의 위치를 알아채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고 추측한다. 당나귀는 해산 후 바로 태반을 먹는 대신 재빨리 그 장소를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태반을 먹는 본능이 주로 태반의 영양 가치 때문이라고 가정하는데, 초식 동물뿐 아니라 육식 동물도 이것을 먹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대부분의 포유류와 달리 이것을 혐오한다는데, 한 비교문화 연구를 보면 3백여 개 문화권 중 태반을 먹는 문화권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문화권에서 태반을 조심스럽게 묻는 행위가 있었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출산 과정에서 태반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고 소중히 여겼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우리도 예로부터 ‘태’ 를 신성시해 왔다. 왕실에서는 태를 그냥 태우거나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길지를 골라 태실을 따로 만들어 보관했다. 

지난여름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에 있는 세종대와 자(子) 태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모든 왕자의 태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단종이 원손으로 있을 때 조성됐다고 한다.

태봉과 작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선석사는 이 태실의 수호 사찰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인지 일반 사찰과 달리 요사채 뒤쪽에 태어나는 아기들의 탄생을 축복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태실 법당을 따로 지어 놓았다. 세계 최초의 태실 법당인 것이다. 태실 법당 주련의 글이 아직도 마음의 여운으로 남아 있다. “사랑의 혼씨, 단아한 맵씨, 상냥한 말씨, 아름다운 마음씨” 를 한글로 적어 놓았다.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다. 어쩐 연유로 이런 말을 사용했을까. ‘씨’ 를 사용한 연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씨앗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태’ 는 생명의 원천이다. 태 속에서 이루어지는 오묘한 조화의 힘을 신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어느 날 우연히 소를 기르는 가축장엘 갔다.

출입구에 들어서자 소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들의 체취가 좁은 우리에 가득 고여 있었다. 모두가 신음 소리 같은 외침이나 울부짖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우리에 갇힌 그들은 영락없는 포로 신세였다.

그중에 눈에 띄는 소가 있었다. 막 새끼를 생산한 어미 소로 양수와 배설물로 범벅이 된 송아지의 몸을 핥고 있었다. 그냥 핥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더러움을 씻어내고 세균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핥는 것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손발이 없는 소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혀가 아닌가. 혀가 사람의 손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소는 태가 나올 때까지 두 시간 동안 쉼없이 송아지 몸 구석구석을 핥았다. 송아지의 등은 마치 젖은 머리를 참빗으로 빗겨 붙여 놓은 듯했다. 어미 소는 태를 쏟아 놓고서야 혀를 거두어 태를 먹었다.  

요즘은 사람도 태를 그냥 두지 않는다고 한다. 태반 주사로 노화를 방지하기도 하고 태를 보관하여 질병 치료용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인간이 태어날 때까지 생명을 기르고 보존해 준 ‘태’ 를 생각해 본다.

태는 최초의 보금자리요 생명줄이다. 그 태를 가르고 나온 인간이기에 생명의 근원인 끈을 오늘도 움켜잡고 살고 있다. 그 끈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것은 물론 타인의 보금자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생명줄이었던 탯줄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는 까닭에, 오늘도 보이지 않는 끈과 끈으로 이어 가면서 한세상을 살아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