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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그곳엔 벽이 있다 / 손정란

그곳엔 벽이 있다 / 손정란

   

 

어릴 적 우리 집 밥상은 늘 풍성했다. 양념을 듬뿍 넣고 슬슬 버무린 겉절이, 된장국, 조물조물 무친 시금치나물이거나 배추나물이 전부였지만 어머니의 정성이 있었다. 우리 형제가 오남매였으므로 준비할 일이 많았다. 채소를 다듬고 감자 껍질을 벗기거나 하여 다음 음식을 준비하는 일 때문에 어머니가 불평하시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종일 바깥에서 시달리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에서부터 풍기는 자기 집만의 독특한 음식냄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면 우선 떠올리는 영상도 식탁 가운데 맛있는 음식을 놓고 둘러앉아 먹는 가족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음식은 단지 가족들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것」 이상의 정서적인 것과도 연관된다.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사과 하나 깎아 먹을 시간도 빠듯한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근대화 이전에 집은 일터와 다르지 않았다. 논과 밭에서 하지 못한 작업은 모두 집에서 이루어졌다.

직장과 주택이 분리되면서 노동은 주택의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부엌은 주부의 노동 공간으로 남아있다. 남향은 거실과 안방의 몫인 것이 우리 주거의 형태다. 부엌은 나머지 그늘진 곳에 자리 잡는다. 거기다 부엌은 주부에게 벽을 보고 서 있게 한다. 퇴근한 남편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주부는 남편을 등지고 상을 차린다. 온 가족들이 모여드는 명절에도 주부는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벽만 보며 설거지를 해야 한다.

부엌은 주택의 조종석이다. 작업하면서 거실에 앉은 남편을 보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바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식탁에 앉아 숙제를 하는 아들 딸의 말벗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쉽게 바꿀 수 없을지 몰라도 부엌은 바꿀 수 있다. 부엌을 바꾸지 못한다면 세상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부엌은 주부가 외부에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 공간이 되어 왔다. 말끔하지 않은 부엌살림의 모습을 손님들에게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한참 작업하는 자신의 뒷모습을 감시당하듯이 노출시키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식사의 공간은 부엌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섰다. 가족들은 아내가,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음식만을 먹는 것이 아니리라. 음식을 만들면서 기울인 사랑과 정성을 함께 먹는다. 내가 맛 본 음식 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고구마로 만든 독특한 맛의 범벅 죽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면 고구마를 얇게 썰어 초가지붕 위에 널어 말린다. 겨울바람에 얇게 썰린 고구마는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꼬들꼬들하게 말려진다. 손가락으로 눌러보아 부러질 정도로 말랐으면 다시 물에 불린다. 불린 고구마를 은근한 장작불에 푹 삶아 불린 쌀과 찹쌀가루, 붉은 팥, 완두콩 등을 함께 넣고 끓여 먹는다. 나에겐 이 범벅 죽 맛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이 되었다.

우리들은 일상 속에서 아주 많은 현상들과 맞부딪치며 살고 있다. 마음을 열어 관심을 갖기 전에는 세상 모든 일이 그저 스쳐 지나가 버린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보이는 것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들리는 것을 듣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나는 어머니가 서 계셨던 부엌을 회상해 본다. 연탄이 보급되기 전이었다. 첫 새벽에 일어나신 어머니는 전날 길어 두었던 물에 행여 벌레라도 빠졌을까 염려하여 새 물을 길었다. 먼저 장독 위에 물 한 사발을 떠놓은 다음 밥을 지으셨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가만가만 지피신다. 방마다 식구들이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새벽, 어머니는 하얀 행주로 부뚜막을 닦으셨다. 아궁이에서 타는 불의 밝기에 따라 어머니의 얼굴이 달라 보였다. 나는 젊은 날의 내 어머니에게서 부엌은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곳임을 배웠다. 달마다 좋은 날을 택해 맑은 물 떠놓고 저녁 해를 등지며 서 계셨던 어머니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제 부엌은 달라져야 한다. 부엌이 지녔던 난방의 기능도 사라졌다. 아무리 전통적인 한옥이어도 부엌이 입식으로 바뀌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주택의 역할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내 어머니들의 유배지였던 부엌의 벽을 허물어 버려야 한다. 벽을 허문 그 자리에 어머니는 웃음 띤 얼굴로 가족들을 향해 꽃처럼 서 있어야 한다. 남편, 아이들과 마주보며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야 하리라.

 

 

- 2001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