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철학과 사색 / 김태길

철학과 사색 / 김태길

 

 

 

‘철학’ 이라는 학문이나 사상이 있기 전에 ‘철학한다’ 는 행위가 있었다. ‘철학’ 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하는 행위의 특색을 살펴보는 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 ‘철학한다’ 함은 더욱 깊이, 더욱 넓게 생각한다는 말에 가깝다. ‘깊게 생각한다’ 함은 겉만 보고 조급하게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의문이 풀릴 때까지 분석과 비판을 거듭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넓게 생각한다’ 함은 하나의 시각에만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그것만으로도 철학함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깊고 넓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공상(公相)은 철학함이 아니다.

철학함에는 참된 인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진리 탐구의 의지가 없는 생각은 철학함이 아니며, 비록 그러한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진리와는 관계가 없는 엉뚱한 생각으로 방황하는 것은 철학함이 아니다. 진리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깊고 넓게 생각할 뿐 아니라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바르게 생각한다’ 함은 생각의 출발점인 전제(前提)에 거짓이 없으며, 사유(思惟)의 과정에서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잠정적 결론을 얻게 된다. 철학성이 풍부한 수필이 좋은 수필이라는 말은 깊고 넓은 바른 생각, 즉 훌륭한 사상을 많이 담고 있는 수필이 좋은 수필이라는 말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수필의 문학성이 주로 그 문장에 비중을 두은 것이라면, 수필의 철학성은 주로 그 속에 그려진 마음의 세계에 비중을 두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은 주로 마음의 세계를 글로써 그리는 자화상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수필을 위해서는 그 표현의 수단인 문장이 탁월한 동시에 그 문장에 의하여 그려지는 마음의 세계가 풍부해야 한다. 마음의 세계가 풍부하다 함은 단순히 지식수준이 높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지능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정(情)이 메마르고 의지가 박약하면, 마음의 세계가 풍부하다고 보기 어렵다. 지정의(知情意)를 종합해서 볼 때 마음이 깊고 넓은 사람이 마음의 세계가 풍부한 사람이다.

수필은 작가의 인품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인품이 높은 사람은 넓은 의미로 ‘철학’ 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현이나 군자처럼 인품의 완성도가 높아야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며, 장점이든 단점이든 함축성 있고 깔끔한 문장으로 진솔하게 그리면 좋은 수필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마음의 세계가 깊고 넓은 사람일수록 글로 나나낼 수 있는 세계도 넓다는 점에서 우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