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인형 / 김지영
돈을 벌겠다고 집을 나섰던 아내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사채를 쓰기 시작했고, 빚더미는 눈덩이처럼 불어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치자 아내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정을 넘은 시각, 아내는 낡은 승용차에 아이들을 태운 채 짐을 잔뜩 꾸려 넣었다. 트렁크에 실을 수 없는 짐은 머리 위까지 덮었다. 옷가지에 푹 파묻힌 아이들은 눈을 멀뚱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이이들의 애처로운 눈길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아내의 승용차를 비추고 있었다. 승용차 위로 눈이 쌓였다.
“선엽 아빠, 미안해!”
아내는 차에 타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쳤다. 아내는 승용차에 시동을 걸고, 승용차는 미끄러지듯 아파트 정문 쪽을 향해 떠나갔다. 교회 십자가의 불빛이 현란하게 빛나고 내 몸 위로 눈이 쌓였다. 나는 가로등 아래 서서 승용차 바퀴가 남긴 흔적이 눈에 묻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승용차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들어오니 거실에 걸린 시계바늘이 새벽 세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실에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적막한 거실에 시계바늘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날이 밝아오자 장롱을 뒤져 속옷을 주섬주섬 챙겨 배낭에 넣었다.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나도 서둘러 집을 떠나야 했다. 집을 나서면서 아이들 방문을 열어 보았다. 주인 잃은 인형들이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곰 인형 하나를 배낭에 넣었다. 딸아이가 곰돌이라 부르며 늘 안고 자던 인형이었다. 주차장 쪽으로 내려오다가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우리 집 창문을 바라보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밥을 해주시겠다며 나에게로 오셨다. 얼마 후 나는 결혼을 했고, 결혼한 이후에도 두 분을 모시고 살았다. 그 후 장인어른이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을 못하게 되자 처형과 같이 살던 장인을 우리 집으로 모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부모님께 내려가셨다. 아내는 장인어른을 돌보며 두 아이를 낳고 키웠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라 큰아이는 중학생, 작은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낡고 비좁긴 했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
그날 퇴근을 한 후, 학교 가까운 곳에 있는 고시원을 찾았다. 난생 처음 보는 고시원 방은 낯설었다. 한 평도 채 안되어 보였다.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침대와 낡은 텔레비전, 벽에 걸린 옷걸이가 전부였다. 고시원 총무는 주방에 밥은 준비되어 있으니, 반찬만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먹으면 된다고 했다. 주방에 있는 큰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반찬통마다 이름이 붙어 있고, ‘반찬을 훔쳐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도 눈에 띄었다. 고시원에서의 첫날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거리며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했다. 시골에 작은 쪽방 하나를 얻어 살고 있을 아내나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나처럼 뜬눈으로 밤을 새울 것이다. 하필이면 그 때, 방송에서는 어떤 사람이 고시원에 불을 질러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는 뉴스를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불을 낸 사람은 오랫동안 고시원에서 물병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며 지냈다고 했다. 뉴스를 듣다보니 불이 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고시원은 방과 방 사이가 얇은 나무 칸막이로 되고, 통로가 비좁아 대피하다보면 피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고 말 것 같았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방문을 열어놓지 않고서는 도무지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 더구나 옆방에 살고 있는 내 또래의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벽을 발로 걷어차곤 하여 방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럴 때마다 고시원 주변에 있는 공원 벤치를 찾곤 했다. 벤치에 앉아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날이 저물면 방에 들어가서 곰돌이를 앞에 두고 중얼거리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창문 틈으로 기어 들어왔다.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벌레였다. 징그럽게 생겼지만 그 놈이 방안에 들어와서 기어 다니는 것이 싫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누워 있다 보면 머리를 이리저지 기웃거리고, 느릿느릿 더듬이로 짚어가며 침대위로 천정으로 기어 다녔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났다. 퇴근을 해서 방에 들어갔는데 눈에 띄질 않았다. 침대 구석구석이며 이불속까지 뒤졌지만, 창문을 통해 사라졌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벌레가 사라진 후 나는 다시 곰돌이에게 말을 하며 지내야 했다.
그토록 무더웠던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왔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길거리에 플라타너스 잎이 나뒹굴었다. 어둠이 뉘엿뉘엿 내려앉는 저녁 무렵이었다. 퇴근을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덕수궁 옆으로 난 좁은 길을 걷고 있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성경책을 손에 들고 예배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예배당안의 불빛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예배당 안에는 한 여인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문득,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서 저 사람들과 같이 피아노에서 흐르는 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예배당의 문턱이 유난히 높게 보이고, 그들이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이 느껴졌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또 계절이 바뀌어 가는 동안 고시원 생활도 점차 익숙해져 가고, 답답하기만 하던 그 쪽방에 언제부턴가 아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해 정도면 끝날 줄 알았던 그 생활이 중학교 1학년이던 큰아이가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까지 지속되었다. 딸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더니 대출을 받아 식구들이 같이 살 집을 구하겠다고 했다. 며칠 동안 아내와 딸아이가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더니 집을 구했다며 퇴근하면 그리고 오라고 했다.
십 년 전, 집을 나설 때처럼 나는 정든 방을 떠나야 했다. 고시원에서의 마지막 밤, 잠이 오지 않았다. 고시원에 처음 들어오던 날,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몸을 뒤척이며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 날, 곰 인형을 배낭에 넣고는 고시원 문을 나섰다. 햇살이 따스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리자 버스가 왔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의자에 앉아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한강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작은 섬 위에는 새들이 날고, 파아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아, 나도 이제 식구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아내가 일러준 대로 차에서 내려 집을 찾아갔다. 언덕배기를 한참동안 올라가자 산이 나오고, 산중턱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 바로 그 옆에 우리 집이 있었다. 창문을 열면 작은 산이 바라보이고, 거실에는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예쁜 집이었다.
나는 요즘, 딸아이의 방엘 들어가 서성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의 침대 곁에 앉아 있는 곰 인형이 나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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