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주는 선물 / 고정희
K,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매번 제게 신경 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K가 계시는 맨하탄 거리는 열정적인 인파의 물결과 ‘할로인,잔치로 활기차다 하셨지요? 조지아는 지금 길거리마다 단풍들의 잔치로 화려합니다. 제가 사는 귀넷카운티 끝자락인 헤밀톤 밀(Hemilton mill)은 뉴욕에 비하면 완전 시골이지요. 물론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일전에 한국에서 다녀간 조카아이는 이곳을 ‘유령의 도시’ 같다고 할 정도니까요.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들로 사방이 꽉 찼답니다. 그래서 지금 길거리는 형형색색 단풍들의 물결로 화려합니다. 더불어 제 주위는 우울증으로 몸살을 앓는 이들이 많아집니다. 소위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지요.
물론 K도 우리가 느끼는 이 우울한 감정들의 근원이 알고 보면 결국 일조량의 줄어듬에서 오는, 너무나 어이없는 자연법칙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시지요?
"시몬! ~"을 외치며 낙엽 쌓인 숲속으로 가고 싶고 시인이 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던 어린 시절의 감정도, 태양이 머리위에서 멀어져서 생긴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DNA' 나 '줄기세포'의 발견 소식을 접할 때 보다 더 허탈했지요.
그런 사실을 몰랐던 젊은 시절엔 그 샌치멘탈한(그래요. 젊은 시절의 그 감정은 분명 ‘우울’이라는 단어보다는 ‘센치’라는 단어가 제격일 것 같습니다.) 감정에 허우적대다 못해 몇 편의 시를 쓰기도 했지요. 내가 글을 쓰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머잖아 유명한 시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던 계절. 그리하여 그 우울을 은근히 즐기던 가을철의 그 모든 현상이 햇살 때문이라니… 얼마나 허탈했겠습니까?
어쨌든 지천명의 중반에 접어든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 계절을 넘기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물론 그 감정은 예전과 달리 ‘센치함’ 보다는 ‘우울함’에 가깝다는 변화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가을의 우울이 내 삶에 얼마나 소중했던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내 자발적인 감성의 움직임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왜냐구요? K, 그건 바로 가을은 ‘성찰의 계절’이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봄이 희망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버림의 계절, 성찰의 계절입니다. 욕심 많은 나를 염려해서 神이 지어주신 축복의 계절이지요.
S도 이민을 와서 알겠지만 낯선 땅에 발붙이며 산다는 것이 그리 녹녹했던 것은 아니었지요? 더구나 나같이 소심한 사람에겐 내 모든 의식과 의지를 삶의 전선에 주력해도 늘 긴장되고 불안했습니다. 한 가지 목표를 이루고 나면 그 다음을 위해 목표를 세우며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망을 불려나갔지요. 그 과중한 무게에 스스로 힘겨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그럴 때 맞춰 다가오는 가을병, 그 가을의 우울한 감성으로 인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그로인해 그래도 조금은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꽃 피우던 나무 아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 그제서야 내 삶의 유한성을 재인식하고 욕망으로 무거워진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간을 제공해주는 가을이 해마다 오지 않았다면, 내 영혼은 아마도 진즉에 육신의 노예가 되어 자연의 섭리에조차 무감각한 석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런 가을이 어찌 神의 축복이지 않겠습니까?
K, 나이가 들수록 가을의 의미가 더 깊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사 굳이 가을을 기다리지 않아도 이제는 좀 더 깊어져 가는 얼굴의 주름이, 머릿속의 기억력이 아직도 철없이 날뛰는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듭니다. 욕망을 채우기 보다는 버리는 때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올 가을엔 작정하고 좀 더 차분히 버려야 될 것들을 찾아 볼 생각입니다. 물론 많이 버리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더 용기도 낼 작정입니다. 아직도 내 나인 초로의 청춘이라면 청춘이니까요. 추운 겨울 동안에도 안으로 조용히 나이테를 키우며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지혜도 배워서 내년 봄에는 내게 알맞은 희망의 꽃을 피워 봐야지요.
가을 바람이 뜰 가득 불어댑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던 잎들이 나비처럼 나풀대며 생의 마지막 춤사래를 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곧 뜰에 나가 고운 단풍 몇 닢 주워 부엌 식탁 위 에 깔아 놓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엔 그 식탁에 향기로운 차를 준비하고 며칠 냉전 중이던 남편을 초대할까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나가봐야겠으니 이만…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11월 1일, 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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