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요리 / 김향안
아이들 삼촌이 하루는 광 속에서 부스럭부스럭 나무 토막을 주워 내더니 묘한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연을 날릴 실패 같기도 하나 삼촌이 연을 날리려고 실패를 만들 까닭이 없고, '그거 만드는 거 뭐요?' 물어도 삼촌은 피식피식 웃기만 한다.
옆에 있던 아이가,
'삼촌이 아침마다 강가에 가더니 낚시질 할래나 봐.'
한다. 그러고 보니 삼촌이 만드는 것은 낚시 실을 감을 실패였다. 그제서야 삼촌은 빙그레 웃으며,
'잉어 낚아다 드릴게요.'
'잉어가 쉽게 낚아질까?'
그날 저녁 상머리에서 그 얘기를 하니까 아버지 역시,
'잉어가 그렇게 쉽게 낚아지는 줄 아니?'
하며 일소에 부친다. 그런데 삼촌은 뜻밖에도 열을 올려 가며 낚을 수 있다는 자신을 피력한다. 그럼 어디 한번 낚어 보라고 우리는 솔깃해서 낚싯줄이며 고기밥을 준비할 자금을 내주었다.
삼촌은 신이 나서 금방 한 보따리 장을 봐 왔는데 그것들은 낚시줄과 방울을 비롯해서 잉어가 좋아할 떡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보리니 콩이니 녹두니 깻묵, 비타민, 당원, 맛나니 등등이었다. 곡식은 볶아서 가루를 만든다고 맷돌질, 절구질로 집안은 한바탕 소란했다.
가족들은 어쩐지 즐거웠다. 삼촌이 강에 가서 잉어를 낚아 온다는 것이 즐겁게 기대되었다. 이른 새벽 먼동도 트기 전에 고기밥과 낚시 도구를 짊어지고 강가로 내려가는 삼촌을 전송하고 식구들은 다시 새벽잠을 계속했다. 아침에 삼촌이 먹을 도시락을 나르고 점심에 또 도시락을 나르고 집안 아이들은 부엌에서 강가로 하루 종일 왔다갔다 분주했다. 점심 후까지도 한 마리의 새끼 잉어도 못 잡았다는 보고를 듣고 가족들의 열은 차츰 식어 갔다.
그러나 저녁 무렵 드디어 삼촌은 새끼 잉어 두 마리를 낚아 들고 돌아왔다. 가족들은 환성을 올렸다.
항용 잉어는 다듬지 않고 비늘도 내장도 그대로 둔 채 푹 고든지, 본격적으로 하려면 오지시루에서 잉어의 원형이 없어질 때까지 쪄서 그 쫄아든 액체를 보약처럼 마시는 거라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새끼 잉어 두 마리는 그렇게 약으로 먹느니보다 저녁 찬으로 먹기 위해 볶아 먹자고 했다. 그래서 비늘을 거슬르고 내장을 빼고는 다듬어서 갖은 양념을 해서 볶아 놓으니까 그 맛이 훌륭하기가 생선 요리 중에서는 일급이었다.
잉어가 보약이 된다는 이유는 잉어란 놈은 힘이 세서 폭포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서 온거다. 또 잉어는 흔히 아무데서나 낚아지는 물고기가 아니고 맑은 물에서만 낚아지는 귀한 것이며, 그 성품이 의젓해서 한번 도마 위에 오르면 점잖게 단념하고 뛰지 않으므로 잉어는 고기 중에서 왕이라고 일컫는다고 들었으나, 사실은 그 모든 이유보다도 그 맛이 훌륭함에서 오는 전설일 거다.
그렇듯 귀한 잉어가 웬일인지 삼촌 낚시에 곧잘 걸려들었다. 삼촌은 재미가 나는 모양으로 거의 밤잠을 안자고 매일 같이 잉어 낚기에 몰두했다. 날마다 두세 마리 내지는 너덧 마리의 제법 굵은 놈도 낀 잉어를 낚아 왔다.
우리는 고아도 먹고 찜도 해 먹고 매일 잉어 요리로 온 집안에서 비린내가 풍길 지경인데, 이상한 것은 다른 생선 요리 같지가 않아 매일 먹어도 그 맛이 밀키지 않는 것이다.
귀한 고기가 매일 낚아지는데 우리만 먹기 아까워서 아버지 점심에 잉어 찜을 내보내 직원들과 나누도록 했는데,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버지 말씀이 모두들 집에서 낚은 잉어라는 걸 믿지 않으니 내일은 잉어를 산 채로 들고 가야겠다고 하신다.
다음날 아침 성적은 한층 좋아서 새끼 세 마리에 팔뚝 길이 만한 굵은 놈이 두 마리가 잡혀 왔다. 아버지는 큰 놈 두 마리를 들고 의기양양해서 학교로 나가셨다.
그날 점심에 학교 식당에서 잉어 요리가 어떻게 됐는지 미처 못 알아봤으나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집에서 낚은 잉어라는 걸 모두들 믿게 됐다는데, 그 다음이 걸작이다.
너도 나도 잉어 한 마리씩 사 달라는 주문이 오는 것이다. 그들은 물론 요리해 먹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같이 약으로 먹겠다는 거다. 그럼 가만 있으라고 이제부터 낚아지면 한 마리씩 차례로 주마고 약속을 해 놨는데, 며칠 전 남선에 폭우가 내려 흙탕물이 서강 상류로부터 흘러내려오므로 강물이 맑아질 때까지 낚시꾼들은 일단 도구를 걷어 집으로들 들어오게 되었다.
삼촌은 그 동안 밀린 잠을 자느라고 대낮에 코를 고는데, 가만히 보니 거진 한 주일 밤잠을 안 자고 강가에 내려가 살더니 바싹 여윈 것 같다. 낚시질하다 건강에 축나면 안 된다고 낚시질 그만두라니까 삼촌은 펄쩍 뛴다.
건강이 반대로 좋아진다는 거다. 참 재미나기도 하려니와 힘이 들어 운동이 된다고 한다. 잉어란 놈이 어찌 힘이 센지 물려도 한참 싸우지 않으면 끌어올릴 수가 없고 종종 줄이 끊어진다고 한다.
노인 낚시꾼들이 새끼밖에 못 낚는 것은 힘이 부쳐 그런 거라고, 강가에서 굵은 놈은 도맡아 놓고 삼촌이 낚는다고 하며 곧 추워지면 잉어는 없어지는 계절이니까 강물만 맑아지면 또 한바탕 낚겠노라고, 낚시질이 재미나서 못 견디겠다는 모양이다.
우리는 삼촌과 같이 다시 잉어 요리를 기대하는데 이번에는 귀한 잉어를 찬으로 해서 먹을 게 아니라 우리도 약으로 고아 먹자고 하는데, 과연 강물이 맑아지면 삼촌 낚시에 잉어가 다시 걸려들 것인지 그것은 모를 일이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좋은수필]웃기 돌 / 김은주 (0) | 2014.05.29 |
|---|---|
| [좋은수필]양가죽 지갑을 데리고 / 김원순 (0) | 2014.05.28 |
| [좋은수필]외사랑 직박구리 / 김용옥 (0) | 2014.05.26 |
| [좋은수필]하늘 가는 길[天路歷程] / 권중대 (0) | 2014.05.25 |
| [좋은수필]내가 잘하는 것 / 전상준 (0) | 2014.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