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 피천득
무슨 생각이었는지 사지 못할 집을 복덕방에 물어보고 가회동 골목길을 도로 나왔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비원으로 옮겼다. 비 내리는 고궁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나는 우연히 돈 삼백 환을 내고 값이 있다면 몇 백억이 될 그 넓은 정원을 혼자 즐길 수 있었다. 흐뭇한 소유감 까지 가져보려 하다가 문득 깨닫고 유연히 비 맞는 연잎들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가난을 느끼는 일이 거의 없다. 다행히 삼십 여 년 간 실직을 한 일이 없고 욕심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술 담배에는 돈을 아니 쓰고 반찬 가게에 외상을 지지 않고 월급을 미리 당겨 쓰지도 않고 월부라든가 계라는 것을 하지 않아 돈에 쪼들리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 식. 주 셋 중에서 주택 때문에 가난을 느끼는 때가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주님의 말씀과 같이 달팽이도 제 집이 있고 누에도 제 집을 만들어 드는데, 나에게는 내 집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남산에서 만호 장안을 내려다보고,
“집, 집, 집 사면에 집, 그러나 우리를 위한 집은 한 채도 없구나.” 이런 한탄을 한 일이 있다. 한때는 옛날 서생들의 기술사였던 성균관 동재에 방을 빌어 살림살이를 한 일도 있다. 그리로 이사간 첫날밤에는 꿈에 유생들이 몰려와서 나가라고 야단을 치지나 않을까 하고 퍽 걱정을 하였다. 어느 해는 일 년에 여섯 번 이사를 한 해도 있었다. 해가 아니 들어서, 물 길어 먹기가 어려워서, 옆집이 구공탄 공장이어서, 가까이 제재 공장이 생겨서, 그리고 두 번은 집주인이 내놔 달래서 그렇게 되었다. 칠 년 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방 둘 있는 여단 주택으로 이사를 올 때, 그때 기쁨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아이들은 “이것이 인제 우리 집이지” 하고 좋아라고 뛰었다.
우리 집에는 쏘니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가 있었는데, 제집을 끔찍이나 사랑하였다. 레이션 상자 속에 내 헌 자켓을 깐 것이 그의 집인데, 쏘니는 주둥이로 그 카펫을 정돈하느라고 매일 장시간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 삐죽한 턱주가리를 마분지 담벽에다 올려놓고 우리들 사는 것을 구경하고 때로는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저의 집 앞은 남이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마치 궁성을 지키는 파수병같이 나는 이개 못지않게 집을 위하였다.
칠 년 동안에 아이들이 자라고 책이 늘었고, 왜 버리지 못하는지 모를 너저분한 물건들도 많아졌다. 집이 좁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넛집 라디오가 소란하고 골목 여인네들의 목소리가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내 방이 갖고 싶어졌다. 나는 이사를 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 매매가 없다는 요즈음 우리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섰다. 나는 집값이 떨어졌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금세에 덜컥 계약을 하였다.
그리고는 집을 보러 나섰다. 교통 좋은 곳은 엄두도 못 내고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변두리마다 돌아다녀보았다. 팔려고 내놓은 집은 많아도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만 다 못한 것들이었다. 매일 지쳐서 돌아오면 이 집같이 좋은 집은 없었다. 꽃 심을 뜰이 좀 있고 방이 너덧 되는 집, 이것이 내가 원하는 집이다. 언제든지 내 돈은 집값의 반이나 삼분의 일밖에 아니 된다.
나는 잠을 못 자게 되었다. 집 보러 다니느라고 몸이 피곤한데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칠 년 만에 새삼스럽게 가난을 느꼈다. 불안과 초조로 두 주일을 보내다가 집 내 놀 기일이 다가오자 마침내 집값의 절반을 십오 년간에 걸쳐 은행에 부어간다는, 그리고 버스가 십오 분에 한 번씩 다니는 곳에 있는 주택 하나를 계약하게 되었다. 십오 년! 내 방, 좋은 말로 서재의 대가로 십오 년 간 부어갈 부채와 교통을 위한 무수한 시간을 지불하게 되었다.
그저 이 집에 그냥 살고, 비 오는 날이면 비원이나 찾아갈 것을 공연히 이사를 한다고 나는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이삿짐을 상상하면 더욱 가난을 느끼게 된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편지 / 조현태 (0) | 2014.11.01 |
---|---|
[좋은수필]싸리꽃 / 조병화 (0) | 2014.10.31 |
[좋은수필]청마의 쾌족 / 홍억선 (0) | 2014.10.29 |
[좋은수필]돈과 행복은 얼마나 친할까 / 서숙 (0) | 2014.10.28 |
[좋은수필]첫사랑을 말하지 말자 / 김상립 (0) | 2014.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