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 / 김용옥
한벽루 지나서 각시바위 지나고, 승암사를 돌아 서방바위를 지나간다. 견훤산성이 긴 그림자로 누워 서늘하고 잔잔하다. 전주천은 전주 남쪽에서는 북류하다가 한벽루에서 굽이돌아 서행(西行)하는 물길이다. 역사의 일화를 생각하며 걷는다. 반짝, 찬란, 저 무지갯빛이 뭘까? 하늘 향해 고개 들어 둘러보아도 무지개도 흰 구름에 물든 놀빛도 없다. 반짝, 찬란, 혹시 각시붕어? 무지갯빛 비늘이 영롱하고 꼬리지느러미 우아한 그 각시붕어? 에고, 아니네. 담뱃갑 겉종이인 빤닥종이 조각이 물결에 반사된 거였다.
어릴 적, 여름날 해질녘. 배추색 고무신 어항에, 예쁜 각시붕어 한 마리를 우아하게 띄우고 자분자분, 맨발로 신작로를 걸어 귀가하던 날.
“엄마, 물고기에 무지개가 떴어요!”
“각시붕어구나. 빛깔이 곱고 지느러미가 치마폭 같아서 각시붕어라고 하지.”
세상에서 제일 예쁘던 그 각시붕어 곧 버들붕어는 제 집이 없이 민물조개 안에 알을 낳아 수정한다. 조개 속의 난황으로 자란다. 그 서러움이 그리 고운 빛으로 피어나는가. 그들의 존재방식, 존속방식이다.
한국전쟁 후, 척박하고 곤고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서로 도우며 잘 자라, 한국을 세계경제 13위국으로 발전시켰다. 자랑스럽다.
지금엔,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건 옛말. 외려 화려한 요즘 청춘은 셋방살이 싫어 결혼 못 하고 부자(富者) 부모라는 난황이 없으면 자녀교육도 못한다. 사람들이 자연물의 별난 삶의 방식을 닮아 간다.
근데 어쩌나, 버들붕어도 민물조개도 어느새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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