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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낙타 / 김점숙

낙타 / 김점숙

 

 

 

희뿌연 오래바람 뿐이다. 메마른 바람이 모래사막을 훑고 지나간다. 태양과 바람과 모래가 전부인 아득한 땅 오만의 사막에 섰다. 신드바드의 고향이다.

아부다비에서 차로 달리고 달려서 오만으로 갔다. 모래바람이 도로 위로 무리지어 이동하듯 움직였다. 안개가 피어나듯 몽글몽글 모래바람이 피어올랐다.

황량한 사막에서 낙타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과 햇볕과 모래뿐인 사막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직 낙타뿐이었다. 낙타는 무표정한 모습이고,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도 않았다. 가까이에서 쳐다본 낙타는 슬픈 눈빛이었다. 체념한 듯 한 눈동자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은 채 긴 속눈썹 속에 눈을 감추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을까. 그저 길들여 졌을까. 그저 걸을 뿐이다.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사막을 뚜벅뚜벅 걷는다.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늑장을 부리지도 않은 채 바퀴 돌아 제자리로 와서 사람을 내려놓는다. 털커덕하고 긴 다리를 접어 꿇어앉는다. 생경한 느낌이다.

사진에서 본대로 낙타의 등에는 두 개의 혹이 볼록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혹에 눈길이 간다. 몇 날 며칠 사막을 건널 때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 다른 동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여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낙타의 혹에는 지방이 들어 있어 자신의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지방을 분해해서 물을 얻는다고 한다. 낙타는 사막에 적응하기 위해 눈썹이 두 겹으로 되어 있어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모래를 막기 위해 콧구멍을 열고 닫을 수도 있다. 결국 낙타는 혹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사막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별다른 생존의 무기가 없는 낙타는 맹수들을 피해 스스로 척박한 사막에 찾아들어 인간들의 낙타 투어를 자처했을지도 모른다. 황량한 사막을 평생의 일터로 삼고도 불평불만 한마디 없다.

그저 애오라지 똑같은 보폭으로 걸으며 사람들을 실어 나를 뿐이다.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것이 애초부터 제 운명이었듯이. 고산지대에서 포터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묵묵히 옮기는 것을 보는 것만큼이나 애잔하다.

나에게도 낙타의 혹처럼 떼어 낼 수 없는 혹이 있다. 하나는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딸이다. 낙타가 사막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혹의 영향이 크듯, 나 또한 시집이란 사막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 시집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 심지어 시누이가 될 이가 찾아와서 걱정을 해 주었지만 사랑에 콩깍지가 낀 나는 그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이 남자가 아니면 죽을 것처럼 사랑을 했다.

그러나 결혼 후 우유부단한 태도로 시집식구들과 나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힘들게 할 때는 이 남자만 아니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늘 시집 편이 되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나를 이어 주는 자식이라는 혹이 있었다. 스스로 척박한 사막을 찾아든 낙타 꼴이 되었다. 낙타를 만나기 전에는 그 혹을 떼어 버리고라도 도망을 가고 싶었다. 지금은 낙타 없는 사막을 상상 할 수도 없다. 이제 보니 혹이 없는 낙타는 낙타가 아니었다. 예쁜 혹이야말로 낙타의 상징이었다.

동서와 시어머니의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기가 무척 어려웠다. 중간에서 겁 없이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오히려 나까지 관계가 좋지 않아 졌다. 동서 편에 서면 시어머니가 싫은 내색을 했고, 시어머니 편에 서면 동서가 싫은 내색을 했다. 결국 동서의 결혼생활은 삭은 고무줄처럼 툭 끊어지고 말았다.

낙타에는 여러 가지 덕이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보존의 전문가이며,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는 인내의 덕을 가졌으며 평생을 유목민의 발이 되어 주는 이타적인 것을 가졌다. 짐을 싣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어야하는 겸손함의 미덕까지 있다.

낙타의 덕을 닮고 싶다. 인내와 겸손으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낙타를 통해 깨닫는다. 낙타가 무릎을 굽히고 꿇어앉아야만 사람을 태우고 내려 줄 수 있듯이 나 또한 가정을 지키려면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사나운 바람이 불 때는 콧구멍을 닫고 눈을 감는 낙타처럼 나 또한 눈을 감아야 한다.

지난한 삶 속에 지쳐 있을 때 낙타를 만났다. 낙타와의 조우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내 처지를 원망하며 나의 선택을 후회 했을 것이다. 이제는 낙타가 살아가듯이 나 또한 황량한 모래밭을 건너야할지라도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낙타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별과 달과 하늘과 해와 모래밭에 본 것이 없는 낙타의 눈이지만, 그 눈 속에는 세상사 시름이 다 녹아 있는 듯하기도 하고, 두려움도 슬픔도 아픔도 잊은 듯 무심하기도 하다. 그래서 낙타의 눈은 슬프다. 슬픈 눈 위로 희뿌연 모래바람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