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 한 마리 / 류영택
자영업을 하는 나는 퇴근시간이 따로 없다. 해가 저물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면 집으로 간다.
요즘은 귀가 시간이 더 늦어졌다. 물론 해가 길어져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승용차 대신 자전거로 통근을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출근을 해도 가게에 도착하는 시간은 승용차를 탈 때보다 별반 차이가 없다. 집에서 가게까지는 내리막길이다. 힘들게 페달을 밟지 않아도 속력을 낼 수가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출근길이 수월한 만큼 퇴근길은 더디고 힘이 든다. 잠시도 쉬지 않고 페달을 밟다보면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고 이내 이마에도 땀이 맺힌다.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족을 먹여 살릴 일터가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대게 집이다.
하필이면 그곳에다 장사를 하게 됐는지. 얼마 전 대게 집이 생기고부터 그 앞을 지나치는 게 여간 곤욕스럽지가 않다.
대게 집은 삼거리에 있다. 오르막이 심하다보니 출근 때와 달리 걸어서 가야만 한다.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비탈길을 오르면 구수한 대게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온다. 한창 배고파 올 시간에 웬만큼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는 그 유혹을 뿌리 칠 수가 없다. 구미가 당기다 못해 눈이 뒤집힐 지경이다.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처럼 수족관 앞으로 저절로 걸음이 옮겨진다.
‘한 마리 사갈까.’ 수족관에 무리지어 있는 암갈색 대게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고 서 있으면 주머니 속 지갑과 아내의 얼굴이 번갈아 눈앞을 스쳐간다.
"이달에는 차 보험도 새로 갱신해야 하고, 자동차세, 재산세…….” 꽁꽁 앓는 소리를 하던 아내를 생각하면 그만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아내를 생각하며 걸음을 서두르지만, 썩둑 새끼손가락을 자르고도 남을 것 같은, 커다란 집게발을 한 대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젠장맞을, 주머니가 비니 어째 먹고 싶은 것도 많나!’ 대게 한 마리도 마음 놓고 사먹을 수 없는 현실에 신세타령을 하고 만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죽어라 일만 하고 살아온 것 같은 데, 갈수록 살림살이가 못 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십년 전 타이어펑크 값이 아직도 그대로다. 해마다 월급이 오른 월급쟁이와 그 격차는 이제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자화자찬 같지만 그동안 버텨온 것만 해도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GNP가 올랐다지만 오른 것은 가게 세와 세금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먹고 싶은 건 먹고 싶은 거다. 대게 집 앞을 지나칠 때면 차라리 신용불량자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카드빚, 사채 빚도 없는,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내가 오죽 답답하면 이런 생각을 다 할까마는, 내가 정말 신용불량자였더라면 대게 한 마리가 아니라 식구수대로 사지나 않았을까. 집도 절도 없는 알거지자가 천지 겁날 게 뭐가 있겠는가. 오늘만 살고 말 것처럼 '먹고 죽은 귀신 화색도 좋지. 무라, 무라 묵는 게 남는 기다.' 그날 벌어 그날 먹어치웠을 것이다.
수입이 일정한 월급쟁이와 달리 자영업자가 빚 없이 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불그스름한 대게가 가마솥뚜껑 만하게 보여와도 빚 없이 살아온 자부심에 결국 발목이 잡히고 만다.
참고 사느라 목젖이 다 닳아 없어진 줄도 모르고 주위 사람들은 내가 진짜 알부자인줄로 알고 있다.
"저 친구 오래 살라고, 자전거 탄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비록 아내의 등살에 못 이겨 자전거를 탈지라도 기분은 좋다. 정말 가진 게 없어 자전거를 탄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힘이 들어 페달을 밟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빈말일지라도 못 산다는 소리 듣는 것 보다는 잘 산다는 소리 듣는 게 났다.
“운동에는 자전거만한 게 없지.” 나는 차로 출퇴근을 할 때와는 천상간이라며, 대게다리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리통을 내보이며 너스레를 뜬다.
한동안 해오지 않았던 저녁운동을 하게 됐다. 물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부터 별도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게으름을 피웠지만, 더 이상 아내의 잔소리를 감당할 수 없어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아파트에서 근처 수목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데는 대략 한 시간 쯤 소요된다. 처음에는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밑천이 바닥나고 만다. 삐친 것처럼 입을 다문 채 걷다보면 아내와 나는 서로 각개약진이다. 걸음이 더딘 나는 아내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하루는 삼거리에서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도 아내는 멍하니 대게 집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사람마음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비싸겠지요?"
"와?"
"아이들 때매."흉년이 들면 아이들은 배 터져 죽고, 어른은 배고파 죽는다는 말처럼, 보나마나 딸아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근은 멀쩡해가지고. ('엄마, 억수로 크다. 우와, 맛있겠다. 저런 거는 엄청 비싸겠제.') 빙빙 둘러치며 제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해왔다.
"얼마나 한다고!"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지만, 새삼 알거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게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자전거 핸들에 걸고 오르막을 오른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대게 한 마리를 사들고 가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걸음을 서두느라 거친 숨을 내쉬자 구수한 대게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오늘은 아침부터 장사가 잘 됐다. 근래에 와서는 좀처럼 없었던 일이다. 평소 같으면 삼일동안 맞아야 할 손님이 오전에 다녀갔다. 이대로라면 퇴근길에 삼거리 대게 집을 들러도 될 것 같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저녁 문상을 가야할 일이 생겼다. 온가족이 둘러 앉아 대게를 뜯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던 나는 좋다 말았다는 듯이 쩝쩝 입맛을 다셨다. 웬일이냐며! 놀랬게 주려고 미리 말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대게 집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우선 한 마리라도 사서 딸아이에게 맛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 아빠도 무라."
"니나, 만이 무라."
제 엄마에게는 먹어보라는 말도 않고, 행여 내가 정말 먹기라도 하면 어쩌나. 양손에 게 다리를 거머쥐고 손등으로 콧물을 훔치는 딸아이의 모습과, 지난 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욕심을 내다 채하지나 않을까 딸아이의 등을 다독이는 아내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간다.
아침출근길이 편하면 저녁퇴근길이 힘이 드는 것처럼, 살다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가게를 찾는 손님이 차츰 늘고 있으니 그렇게 조바심을 낼 일도 아닌데. 하도 경기 좋지 않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체감경기보다 내 마음이 더 움츠려든 것 같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을 오른다. 아파트가 보인다. 발코니에 켜둔 발간 마중불이 딸아이의 환한 얼굴로 다가온다. '우리 아빠 최고!' 대게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내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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