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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슬픈 허수아비 / 김정순

슬픈 허수아비 / 김정순

 

 



살아간다는 것이 답답하고 지금의 처지가 팍팍하게 느껴질 때, 빈 들판을 걷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앞이 보이지 않게 부유하는 삶의 찌꺼기들로 혼란이 일어나면, 빈들에 발자국을 찍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일상처럼 되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는 큰소리를 쏟아내도 노래를 불러도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아 자유인이 된다. 아무에게도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날개라도 달고 날고 싶은 것은 욕심일 뿐, 현실은 족쇄가 된다.
나도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다. 지금은 고달픈 육신을 쉬어야할 때다. 그러나 달갑지 않게도 손자의 어미노릇을 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사실이 무거운 짐짝처럼 어깨를 짓눌러왔다. 통곡조차 할 수없는 답답한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할 수 있을까. 심장이 터질듯이 답답했다. 그래서 빈 들판이 위로처가 되었다. 빈 들판의 바람소리에 휩쓸려 심중의 괴로움이 날아가 버리기를 바라는 허황한 기대 같은 것도 있었으리라.
그날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말라버려 버석거리는 포도넝쿨 사이를 비집고도 바람은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들판을 걷고 있는 내게 바람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우우하는 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멀지않은 논두렁에 노인이 가슴을 치며 통곡을 쏟아내고 있었다. 생명주를 삶아놓은 듯 쪼글쪼글한 주름사이로 눈물이 석양빛에 반짝였다. 무슨 사연으로 빈 들판을 통곡으로 채우고 있을까? 머지않아 어둠이 몰려 올 것이고 차가운 바람은 더욱 기세를 부릴 것이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냥 가시오.” 손사래를 치는 할머니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힘주어 잡으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삭아버린 육신을 이끌고 내 청에 못 이겨 일어섰다. 노인은 물레에서 실을 뽑아내듯 자신의 고달프고 괴로운 이야기를 줄줄이 뽑아냈다. 흐르는 눈물을 앙상한 손등으로 연신 찍어내면서 끈끈한 한숨을 섞어가며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나도 내 자식 다섯을 길렀을 때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오. 무슨 팔자가 이리도 더러운지 모르겠소. 내 나이가 칠십 다섯이오. 늘그막에 자식들 바라보며 편안하게 살고 싶었소. 그런데 오년 전에 셋째가 이혼을 했소. 애 어미라는 것이 세 살 먹은 아이를 팽개치고 가버렸소. 아이나 똑똑하면 몰라도 태어나면서부터 모자라는 아이로 태어났소. 자식을 버리는 어미가 어디 있소. 그도 온전치도 못한 자식을 말이요.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소. 그런 자식을 키워 보겠노라고 애비는 월급을 아이한테 쏟아 붇고 있소. 아무리 공을 들여도 알곡이 되지 못하고 쭉정일 수밖에 없는데 말이요. 내가 그런 아이를 오년이나 길렀소. 이제는 힘도 딸리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소. 동생집이라도 한번 다녀오고 싶지만 내 다리를 꽁꽁 묶어두고 있소. 혼자 있는 아들과 성치 못한 손자의 앞날을 생각하면 내가 미칠 것만 같소. 애 아비를 재혼이라도 시키고 싶지만 모자라는 자식을 두고 있는 남자에게 시집올 여자가 어디 있소. 제 자식도 식은 밥 버리듯 버리는 것이 요즘의 세태가 아니오? 떠나간 애 어미도 밉고 이런 팔자를 타고난 나도 밉고 미칠 것만 같소.” 노인은 몇 번이나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한참을 꺼이꺼이 울곤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깡마른 손이 차가웠다. 할머니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아 보았다. 노인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힘든 내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또 생겼소. 맏이가 사업이 잘 되지 않아 힘들어 하더니 목숨을 끊어 버렸소. 이러니 내가 어찌 버티겠소.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다오. 가슴이 터질 만큼 답답하여 통곡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놈의 아파트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 와서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두 다리를 뻗고 가슴 치며 울고 돌아가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하다오.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소.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없는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쏟아내니 속이 편하다고 했다. 처해있는 환경은 다르지만 나도 손자를 길러야하는 처지가 아닌가. 지금의 세태는 할머니가 손자를 길러야하는 병적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맡기는가하면 이혼으로 버려지는 아이 또한 노인의 차지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이시대의 할머니들이 거의 겪고 있는 고민입니다. 부끄러워 말하지 않을 뿐이지 많은 할머니들이 같은 처지입니다. 이혼율이 오십 프로를 넘고 있는 세상이니 자식이 둘이면 하나가 이혼한 셈이지요. 너무 혼자만의 고민으로만 생각마세요. 손자가 모자라는 아이라고는 하나 어디 마음씨가 고운 여자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들은 단단한 직장이라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경제력도 없는 자식들이 아이를 할머니한테 떠맡기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 비한다면 조금은 나은 처지가 아닙니까? 큰 아드님의 일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세월이 약이겠지요.” 어둠이 밀려드는 길을 걸으면서 할머니를 위로해 보았다. 아니 내가 위로를 받고 있었다.
행복도 불행도 절대적이라기보다 상대적이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손자를 길러야하는 답답한 마음이 할머니의 괴로운 사연을 듣고는 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할머니의 처지에 비한다면 나의 답답함과 괴로움까지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번쩍 떠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남의 불행이 내 불행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단 말인가? 무거운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서 가는 할머니 등 뒤로 기도해 보았다. 부디 마음씨착한 며느리가 나타나 할머니를 쉬게 해주십사하고...........
삶이라는 강물을 따라 바다에 다다를 때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바다란 조용히 쉴 수 있는 평안한 안식처요, 삶의 완성일 거라고 희망을 걸었다. 달려와 본 강의 하구에서 짜디짠 바닷물에 놀랐다. 조용한 바다라고 생각했던 그곳에는 강보다 빠르게 흐르는 조류가 있었다. 끝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에도 휩쓸려야한다. 바다는 쉬는 곳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여울목 이였다. 노년의 바다는 노인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어머니의 자리는 어디가 끝일까? 자신의 육신조차 주체할 수 없는 나이에도 자식을 걱정해야하는 어머니의 가없는 마음. 아흔의 어머니가 일흔의 자식을 어린아이인 듯 걱정하는 끝없는 모정, 어머니사랑은 자식과의 거리를 죽음이라는 강으로 갈라놓지 않는 한 영원할 것만 같다. 살아 있는 한은 영원한 족쇄일 수밖에 없는 자식. 어미라는 자는 그 족쇄를 벗어나려 몸부림조차 치지 않는다. 자신의 들에서 애써 지켜온 알곡을 추수하고 난 고단한 몸으로 자식의 들판을 지켜야하는 고달프고 슬픈 허수아비들. 오늘도 슬픈 허수아비는 자식의 들판에서서, 삭아버린 육신위에 초라하고 남루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두 팔을 부지런히 흔들며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