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력 / 박은희
며칠 전 식탁에서 내외가 말다툼을 하는 걸 들었다. 이틀이 넘도록 두 사람은 있는 듯 없는 듯 서로를 외면하며 오갔다. 우웅 소리가 잦아들며 내 몸이 기진해 갈 무렵이었다. 안주인이 조금 전 식탁에서 밥 한술을 뜨려다 거실에 있던 바깥주인과 눈빛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피식 웃었다. 마지못해 먹는 듯 안주인의 숟가락질에 힘이 실리지 않던 차에 바깥주인이 주방으로 왔다. 슬그머니 안주인의 밥그릇을 내 몸에 넣고는 여러 차례 버튼을 눌렀다. 반 공기도 못 되는 찬밥을 데우기 위해 나는 사력을 다했다. 마지막으로 더운밥을 내어 놓았으니 나는 이제 미련두지 않고 떠날 수 있겠다.
내 몸의 이상증후를 안주인이 발견하면서부터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이따금 안을 닦아주고 설거지 후 한 번씩 몸체의 먼지를 닦는 것이 전부였는데 주방에 들어설 때마다 골똘히 나를 들여다본다. 누렇게 변색된 지 오래인 문짝을 쓸어보기도 하고 군데군데 지워진 옆구리의 글씨를 새삼 보기도 한다. 퓨즈가 내장되어 있다는 말은 처음 발견한 듯한 낯빛이다.
이 집의 두 아이가 세상 빛을 보기 전에 내다 먼저 들어앉았다. 내외가 새살림을 차리면서이니 내 나이 스물이 넘었다. 사람의 세상에서는 꽃다운 나이라 하지만 나는 이제 늙고 병들었다.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내처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서너 차례 이삿짐을 부리면서 안주인은 나를 마뜩찮은 눈길로 보았다. 산뜻하고 성능 좋은 몸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왜 없었으랴. 허나 단 한 번의 신음소리도 내 본 적이 없는 나를 내칠 수 없다고 때마다 마음을 돌려먹는 듯했다. 올 봄에 이사를 하면서도 끈질기기가 나 같은 것들이 줄줄이 딸려온 것이 내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피복이 벗겨진 구식 다리미는 안방에 들어앉아 있다. 쳐도 손잡이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검은 냄비며 끄떡하면 고무패킹이 비어져 나오는 압력솥, 끝이 잘린 부엌칼은 나와 별반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주방 창가에 나앉은 풍란 한 촉이 나를 바라본다. 안주인이 애틋한 눈길을 주며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 너도 어느새 칠 년이 넘었구나. 흙 한 줌 없이도 이토록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주었구나. 냄비나 압력솥처럼, 부엌칼처럼 풍란의 생이 안주인의 손길과 집의 온기와 더불어 푸르다 쇠락할 것임을 나는 안다.
돌이켜 보니 나는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을까. 들큼하고 비릿했던 큰 아이 젖병의 냄새를. 그녀는 알아챘을까. 집으로 돌아온 어린 것들이 홀로 식탁에 엉거주춤 앉아 찬밥을 마주할 때 얼마나 간절히 내 몸을 열어 제치고 싶었는지를. 얘야, 이리 오련. 내 안에 들어와 따뜻한 기운을 받아가렴. 비록 내가 네 엄마의 손을 대신할 수 없다 해도 차가운 너희들 속을 덥히고 싶구나. 드물게 네 식구가 식탁에 마주 앉아 있을 때 내 몸이 얼마나 그득함으로 충만했는지 말해 본들 힘차던 시절로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를 대신할 몸이 내 자리에 들어설 모양이다. 안주인은 나를 내어놓지 말라고 바깥주인에게 이른다. 다섯 개의 칼집에 들어찬 날렵한 칼들을 두고 매번 손아귀에 힘을 더해야 하는 부엌칼을 거두지 못하는 안주인의 습성을 버리고 치우는 것에 익숙한 바깥주인도 닮아갈까. 나보다 더 오래 함께한 그들의 앞일까지 내 어찌 알까.
나는 지금 베란다에 있다. 하필 한 겨울이라 춥고 을씨년스럽다. 김치냉장고도 있고 한 주에 두어 번씩 활기를 띄는 세탁기도 함께 있으니 덜 외롭다.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이 집의 역사를 절대로 발설하지 않은 채 나는 내장되어 지낼 것이다.
며칠 전 식탁에서 내외가 말다툼을 하는 걸 들었다. 이틀이 넘도록 두 사람은 있는 듯 없는 듯 서로를 외면하며 오갔다. 우웅 소리가 잦아들며 내 몸이 기진해 갈 무렵이었다. 안주인이 조금 전 식탁에서 밥 한술을 뜨려다 거실에 있던 바깥주인과 눈빛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피식 웃었다. 마지못해 먹는 듯 안주인의 숟가락질에 힘이 실리지 않던 차에 바깥주인이 주방으로 왔다. 슬그머니 안주인의 밥그릇을 내 몸에 넣고는 여러 차례 버튼을 눌렀다. 반 공기도 못 되는 찬밥을 데우기 위해 나는 사력을 다했다. 마지막으로 더운밥을 내어 놓았으니 나는 이제 미련두지 않고 떠날 수 있겠다.
내 몸의 이상증후를 안주인이 발견하면서부터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이따금 안을 닦아주고 설거지 후 한 번씩 몸체의 먼지를 닦는 것이 전부였는데 주방에 들어설 때마다 골똘히 나를 들여다본다. 누렇게 변색된 지 오래인 문짝을 쓸어보기도 하고 군데군데 지워진 옆구리의 글씨를 새삼 보기도 한다. 퓨즈가 내장되어 있다는 말은 처음 발견한 듯한 낯빛이다.
이 집의 두 아이가 세상 빛을 보기 전에 내다 먼저 들어앉았다. 내외가 새살림을 차리면서이니 내 나이 스물이 넘었다. 사람의 세상에서는 꽃다운 나이라 하지만 나는 이제 늙고 병들었다.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내처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서너 차례 이삿짐을 부리면서 안주인은 나를 마뜩찮은 눈길로 보았다. 산뜻하고 성능 좋은 몸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왜 없었으랴. 허나 단 한 번의 신음소리도 내 본 적이 없는 나를 내칠 수 없다고 때마다 마음을 돌려먹는 듯했다. 올 봄에 이사를 하면서도 끈질기기가 나 같은 것들이 줄줄이 딸려온 것이 내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피복이 벗겨진 구식 다리미는 안방에 들어앉아 있다. 쳐도 손잡이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검은 냄비며 끄떡하면 고무패킹이 비어져 나오는 압력솥, 끝이 잘린 부엌칼은 나와 별반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주방 창가에 나앉은 풍란 한 촉이 나를 바라본다. 안주인이 애틋한 눈길을 주며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 너도 어느새 칠 년이 넘었구나. 흙 한 줌 없이도 이토록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주었구나. 냄비나 압력솥처럼, 부엌칼처럼 풍란의 생이 안주인의 손길과 집의 온기와 더불어 푸르다 쇠락할 것임을 나는 안다.
돌이켜 보니 나는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을까. 들큼하고 비릿했던 큰 아이 젖병의 냄새를. 그녀는 알아챘을까. 집으로 돌아온 어린 것들이 홀로 식탁에 엉거주춤 앉아 찬밥을 마주할 때 얼마나 간절히 내 몸을 열어 제치고 싶었는지를. 얘야, 이리 오련. 내 안에 들어와 따뜻한 기운을 받아가렴. 비록 내가 네 엄마의 손을 대신할 수 없다 해도 차가운 너희들 속을 덥히고 싶구나. 드물게 네 식구가 식탁에 마주 앉아 있을 때 내 몸이 얼마나 그득함으로 충만했는지 말해 본들 힘차던 시절로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를 대신할 몸이 내 자리에 들어설 모양이다. 안주인은 나를 내어놓지 말라고 바깥주인에게 이른다. 다섯 개의 칼집에 들어찬 날렵한 칼들을 두고 매번 손아귀에 힘을 더해야 하는 부엌칼을 거두지 못하는 안주인의 습성을 버리고 치우는 것에 익숙한 바깥주인도 닮아갈까. 나보다 더 오래 함께한 그들의 앞일까지 내 어찌 알까.
나는 지금 베란다에 있다. 하필 한 겨울이라 춥고 을씨년스럽다. 김치냉장고도 있고 한 주에 두어 번씩 활기를 띄는 세탁기도 함께 있으니 덜 외롭다.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이 집의 역사를 절대로 발설하지 않은 채 나는 내장되어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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