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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직단 / 채정순

직단 / 채정순

 

 

 

우리 교회는 정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한다. 그날은 수감자들의 생일잔치 열어 주는 날이라 서둘렀다. 미사를 마치고 불당에 올라와 교자상에 음식을 차리려다 화들짝 놀랐다. 꿈에나 보던 그리운 얼굴이 이마에 녹아 있는 마음까지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우리 사이에 세월의 강이 많이 흘렀건만 그녀의 외모와 표정에는 시간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는 찰나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려는데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그녀의 뒤꿈치가 문턱을 넘어 버렸다.

잔치는 불상의 미소까지 합세해 화기애애하지만 내 의식의 분위기는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어떤 죄목으로 왔으며 원인은 뭘까?’란 의문스런 단어들로 머릿속이 벌처럼 잉잉거렸다. 그런 큰집에서는 받기 힘든 진수성찬을 나 때문에 외면한 듯해 죄를 지은 것 같아 음료수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고개를 문 쪽으로 자꾸 외셨으나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육촌이지만 청상과부가 된 아주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어 자식을 데리고 우리 집에 살다시피 했기에 우리는 친자매처럼 붙어 다녔다.

그전에도 그녀는 교도소 생활을 했다. 무능한 어머니와 두 동생의 건사를 위해 일찍 생활 전선에 나간 탓이다. 천성이 일을 찾아 하는 근면 성실한 타입이라 퇴근 시간 후까지 사건이 난 옆방에 머물었다가 살인죄의 누명을 썼다. 몇 달간 피 말리는 생활을 견디던 아주머니가 누옥이라도 팔아 변호사를 사려고 마음먹었을 때 다행히 범인이 잡혔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당한 분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힘없는 백성이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회사 측에서 사과를 하고 봉급도 올려 준다며 그녀는 그 자리에 복귀를 했다. 주위에서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며 염증도 나지 않느냐고 다그쳐도 그 일이 적성에 맞다고만 했다.

그녀는, 눈앞의 옷감은 어떤 것이라도 일일이 분석해 봐야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집이나 기차, 버스의 커튼이나 방석들은 물론 사람을 대할 때도 옷차림부터 유심히 봤다. 상대방이 옷에 뭐가 묻었나?’ 하고 당황할 때야 시선을 거두는 일이 다반사였다. 무안을 당하고 직업의식이 투철하다고 놀림을 받아도 그 짓을 버리지 못했다.

음력 설 무렵이었다. 벽에 걸린 내 코트를 본 그녀가 의미 있는 웃음을 물었다. 벼르고 별러서 산 설빔이라 이유를 알려고 슬슬 구슬렸더니 평소에는 입이 없는 위인이 그날은 옷에 대해 꽤나 많은 상식을 가르쳐 주었다.

옷의 질감은 염색 빛깔의 농도로 표시가 난다. 좋은 순서는 흰색, 옅은 색, 중간 색, 진한 색, 나염이며, 가장 나쁜 것은 짙은 염색을 해서 자수 처리를 한다. 또 대체적으로 질감이 좋은 옷이 가격도 비싸지만 그와 무관할 수도 있다.”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손과 눈은 내 코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입으로는 좋다고 하면서도 얼굴 표정은 시원찮아 납득이 가게 설명하라고 졸랐더니 자기 회사에 가서 옷감들을 한번 구경해 보자고 했다.

명절 끝이라 그런지 첫 출근일인데도 회사는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화랑처럼 놓인 공장 안엔 국수 같은 원사들이 기계에 매달려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발은 어느새 볕뉘만 몇 군데 앉아 있는 어두컴컴하고 적막한 실내에 따라와 두리번거렸다. 하얀 피륙이 수북이 쌓여 있는 그곳엔 투명 유리가 끼워진 큰 이젤 모양의 쇠 기계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천장에 달려진 말코에서 원단이 펼쳐져 내려와 맨 아래에 있는 두루마리에 감겨 있었다.

그녀가 기계 옆에 붙박인 단추 모양의 스위치를 누르니 주위에 웅크리고 있던 어둠이 좇기는 짐승처럼 달아났다. 또 다른 스위치에 손은 대자 천이 두루마리에 스르르 감겼다. 그녀가 기계를 세워 놓고 검단 과정이라며 흠들을 고르라고 했다.

코앞의 보풀과 얼이 이처럼 반갑다며 웃었더니 더 자세히 살펴보라고 했다. 씨줄이 뭉쳐 짜져서 뽀얀 띠가 음악 노트의 오선지처럼 나타난 게 있어 그것을 지적하자 고개를 끄떡이며 반전의 직단이라고 했다. 다른 홈들은 직수의 잘못에 있지만 이 직단만큼은 기계의 잘못이라며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직단을 내포한 원단은 폭풍에 노출된 민달팽이처럼 애처로운 느낌이 들었다. 띠와 띠 사이가 엉성하게 짜져 심한 부분은 잠자리 날개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흠들을 찾느라 그 말코는 물론 다른 기계의 베틀도 마구 두루마리에 감았다.

베틀에서 뽑아져 나오는 베도 우리네 삶처럼 각양각색이다. 순조로운 인생처럼 깨끗한 것, 보편적인 삶처럼 흠이 적당이 있는 것, 연속적인 고난과 역경 같은 집단적인 흠으로 영 절망적인 상태 등이다. 내 삶의 베는 과연 어디 소속인지 숙연히 가늠해 보았다. 살얼음판 같았던 지난 많은 날들의 투병 생활, 중년도 되기 전에 맞은 가장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와 그의 취음으로 치열하게 치른 부부 싸움, 이들은 면적이 좁게 빠져 짜깁기를 한 얼 모양 지나간 생활 속에 묻혔지만 자칫했으면 잘라 버리는 파경에 이를 뻔했다.

나는 절대자의 눈이 되어 심판을 하듯 보풀을 조각가위로 뒤쪽에 감쪽같이 보내 버렸다. 이것도 적당하면 나염이나 자수용으로 처리하지만 너무 많으면 쓰레기통 신세가 된다고 했다. 자기 의지로 되지 않은, 운명에 휘둘린 자 같은 직단 베는 둘둘 감아 놓았다가 어느 정도 모이면 한꺼번에 짙은 염색을 해서 자수를 빽빽이 넣고 일류 양재사의 손을 거치게 한단다. 그러면 중후한 멋이 나서 절로 명품이 된다며 그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의 흠 없는 베들은 여기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고, 그들은 조그마한 상처도 받아들이지 않는 속성을 가진 완벽주의자처럼 깨끗한 만큼 때도 쉽게 타 생명이 짧다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눈이 열리어 살펴본 내 코트는 진자주 바탕에 오색 빛이 나는 달팽이 모양의 자수가 빽빽이 놓여 있었다. 자수들을 일부러 비집어 보니 보풀과 직단은 물론 짜깁기한 얼의 흔적까지 숨어 있었다. 하지만 누가 올을 그렇게 속속들이 헤집어 볼 것인가. 요즈음 옷은 유행과 싫증 차원이지 떨어져 못 입지는 않는다며 나는 그 자리에서 문득 생각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를 그녀의 별명으로 지어 주었다. 그녀의 행위를 보고 있으면 신도 아니면서 신들의 행실까지 일일이 무늬로 짜낸 아라크네의 열정이 시 공간을 넘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그녀의 별명을 제대로 한 번 불러 줄 여가도 없이 나는 취직을 해서 객지 생활에 바빴다. 계절이 몇 번 갈마든 어느 날 그녀가 차 사고를 내어 또 감옥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면회를 갔더니 운전 미숙으로 브레이크를 건다는 게 액셀러레이터를 잘못 밟아서 사람을 죽였다며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그 후 서로 결혼을 해서인지 우린 도통 만나지지 않았다. 집안 대사 때 잠깐 본 건 너무 오래 전이고 그녀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끔 만나러 온다고 하나 나와는 석산의 꽃과 잎처럼 항상 엇갈렸다.

하필의 해후가 교도소라니, 그녀가 이런 저런 사유로 이곳에 왔노라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으면 그 말을 전폭적으로 믿고 위로를 해 줬을 텐데,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거듭된 교도소행으로 변명도 구차할 자에게 죄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깜짝 놀랐으니 자격지심이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나 보다.

그녀의 마음의 베는 지금 심한 상처를 껴안은 짙은 나염이나 자수 처리용으로 만드는 과정인 신의 가호라고 믿고 싶다. 무교였던 사람이 종교에 귀의해 오늘의 상봉을 만든 것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너무 맑고 밝아 고생도 모르는 연한 색 베의 팔자로 남는 자보다는 고통을 당하고 고생을 해도 남을 배려하고 웬만한 흠은 다 보듬을 줄 아는 진국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편이 낫다.

유행도 타지 않고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아 왔던 그때 내 코트처럼 그녀는 과거의 아픈 부분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형을 다 마칠 때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이해와 배려, 포옹력을 갖춘 달관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못 말리는 위선에 조그마한 싫은 소리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격의 소유자가 남의 걱정, 공연한 기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