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사는 곳 / 최민자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 걸까.
가끔 나는 그가 궁금했다. 몸 안에 유숙하는지 몸 밖에 서식하는지 그조차 도시 알 수 없었다. 선천성 면역 결핍증 같은 것인가. 계절성 독감 같은 바이러스의 변종인가. 달빛처럼, 파파라치처럼, 은밀하게 감기고 엉겨 붙을 때는 바깥세상 어디에서 감염되는가, 존재의 심연을 휘적거리며 소용돌이치듯 일어설 때면 몸 안에 깊숙이 어디쯤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봄비는 인사동 거리를 걷고, 황금빛 슈무커 한 잔을 쨍, 소리 나게 부딪쳐보아도, 저물녘 강물을 옆구리에 끼고 올림픽대로를 끝까지 달려도, 끝내 그를 떨쳐낼 순 없었다. 왁자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조차 섬처럼 나를 유배시켜 놓는 그는 발각당할까 두려워서인지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적인 듯 동지인 듯 아리송한 그에게 이제 나는 가끔 윙크를 보낸다. 적장의 애첩이 된 볼모 여인처럼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엊저녁, 욕실에서 비누칠을 하다가 우연찮게 그의 은신처를 알아냈다. 무심코 돌아본 벽거울 속, 뭉게구름 화창한 등판 한가운데에 어스름한 그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만져지지 않는 견갑골 등성이 아래 후미진 골짜기, 허리를 구부려도 어깨를 젖혀 봐도 내 손이 닿지 않는 비탈진 벼랑 외진 그늘막에, 축구를 찾지 못한 한 마리 짐승처럼 그곳에 내 외로움이 산다. 나 아닌 타자만이, 오직 그대만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한 조각 쓸쓸한 가려움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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