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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향기를 믿다 / 임수진

향기를 믿다 / 임수진

 

 

 

어스름한 시간에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은 고속도로와 나란히 세로로 길쭉하게 있다. 방음벽이 소음을 어느 정도 차단해주지만, 가속력이 붙은 자동차 바퀴와 노명의 마찰음을 송두리째 흡수하기는 어렵다. 나는 길에 이어진 공원의 샛길을 걸으며 허공을 휘돌아오는 소리를 귓속 달팽이관에 주저앉힌다.

주변이 왁자지껄하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까불대며 지나간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자건거 소리, 개 짖는 소리, 음악 소리, 여자들의 웃음소리, 남자들의 고함과 이이의 우는 소리도 들린다. 소리는 끝도 없다. 공원의 운동기구에 몸을 싣고 있던 꼬마는 많고 많은 소리 중에서도 제 엄마의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듣고 용수철처럼 튕겨 제집으로 뛰어간다. 부를 수 있고 부름에 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 소소한 행복이 불현 듯 가슴을 뜨겁게 한다.

 

46명의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합동 장례식 기간이다. 불러서 밥 먹일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들은 통곡한다.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목에서 피가 올라오도록 이름을 불러대지만, 아들은 대답이 없다. 이제 아들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소리를 잃어버렸다.

나는 샛길을 조용히 걷는다. 발소리를 내며 걷는 제 미안해서다. 장례식이 시작되었는데도 실종자 여섯 명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왜 안 보내주는 거지?’ 따져보지만 바다는 말이 없다. 속내를 들킬까 봐 깊게 침묵하고 있다. 바다 또한, 푸르디푸른 젊음르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눈가가 짓무르도록 비통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온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보면 주인공 그르누이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모든 향기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 하나의 향기를 발견한다. 그는 냄새를 추적해 나갔고 냄새의 발원지를 찾게 된다. 많은 사람을 희생한 대가로 그는 십만 가지의 향기와 비교해도 월등히 차이가 나는 향수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46명의 전사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향기인지도 모른다.

허망하고 어이없어 마음을 치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떤 것도 아들이나 남편,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십만 가지의 행복을 잃은 것 같은 그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만, 소리는 잃었지만, 향기는 영원하다는 말도 위로가 된다면 해주고 싶다.

세상은 소리가 아닌 향기로 순환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