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에디슨 구들 / 배형호

에디슨 구들 / 배형호

 

 

 

 

고향 집에 매달 한두 번 정도는 다녀온다. 고향 집은 담장을 경계로 우리 집과 큰 집이 붙어 있다. 큰 집에는 여든이 넘으신 큰아버지 내외분이 계신다.

그때도 오늘처럼 하늘은 우루루 추웠다. 산과 들은 가을 안으로 들어가고 들에는 무와 배추만이 처져 있었다. 큰아버지는 방고래를 뚫고 있었다. 불이 잘 들지 않고 나무만 먹는다고 했다. 큰아버지는 부뚜막 위에 벽 네 군데의 구멍에서 고래의 그을음을 긁어냈다. 해마다 이렇게 긁어내도 예전처럼 따뜻하지 않다고 하며 불기가 전혀 들지 않는 곳의 방바닥도 몇 군데 파헤쳤다.

구들장을 들어내자 내려앉은 흙과 그을음이 고래 틈새를 꽉 막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방 고치는 기술자가 이거 좀 고쳐 봐라. 해마다 고래 청소 안 해도 될 방법이 있느냐?”고 했다. 방바닥에 호스를 깔고 보일러로 온수난방을 하면 아랫목 윗목 없이 해결되겠지만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보일러가 놓인 옆방을 두고도 큰아버지는 굴뚝으로 연기 피우기를 즐기고 있으니 웃음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그렇게 나도 고향 집 마당에 검불을 모아 부엌 아궁이 가득 불을 넣고 굴뚝에 나오는 연기를 즐겼다. 고향 집을 오랫동안 비워 두었더니 사랑채와 헛간은 허물어져 마당으로 넓혔다. 그러나 안채는 나보다 나이도 더 먹었지만 지난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해서 고향에 가게 되면 한 아궁이 가득 불을 넣고 연기를 피워 주게 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큰아버지가 말한 방 고치는 기술자라는 말을 녹이고 녹였다. 방 고치는 기술자, 건축 설비, 이 일을 한 지도 삼십 년이 지나가고 있다. 병역 의무를 마치고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 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여러 경험들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어서도 새김질을 했다.

다시 고향에 갔다. 늦장을 부리던 무 배추도 겨울 속으로 가고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 이불을 펴 놓고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나무는 많이 있다. 사랑채와 헛간을 뜯은 나무가 작은 집채처럼 쌓여 있다. 쇠도 녹일 만큼 불을 넣었다. 바싹 마른 장작의 불길은 고래를 지나 굴뚝에까지 뜨거운 열기를 토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방 안의 이불 밑으로 손을 넣어 보았다. 아랫목 몇 군데만이 따뜻했다. 조금 더 기다리면 구들이 달아서 전체적으로 따뜻할 것이라고 믿고 장작을 더 넣었다. 통나무를 자르고 패서 장작으로 좀 더 만들어 놓고 다시 방으로 갔다. 아랫목은 손도 못 댈 만큼 뜨거웠지만 그 범위는 기대 이하였다. 해가 넘어가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있어 봤지만 방바닥의 온기는 더 확장되지 않았다.

나무만 먹고 방바닥이 달지 않은 것은 고래를 따라 불의 열기가 골고루 가지 않기 때문이다. 큰아버지처럼 해마다 고래를 후비면 그런대로 한해 한해 버티겠지만 방 고치는 기술자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열전도다. 답은 나왔다.

보름 후 예전에 보일러 난방에 사용하고 남은 동파이프를 싣고 시골로 갔다. 구리가 재질인 열전도가 좋은 동파이프는 남은 자투리가 많이 있었다. 방바닥에다 둥글게 말려 있는 손가락 굵기의 동파이프를 돌아가며 깔았다. 아랫목에서 시작해 방 가장자리를 돌아서 방 한가운데로 돌아가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끝을 맺었다. 다시 한 번 파이프 간격을 조정하고 그 위에다 이불을 덮었다.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지난번만큼 불을 넣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방으로 가 가장자리의 파이프에 손을 대어 보았다. 따뜻했다. 윗목의 파이프를 만져 보았다. 따뜻했다. 조심스레 이불 안으로 손을 넣으며 만져 보았다. 따뜻했다. 이불을 걷어내고 가운데로 돌아가며 만져 보았다. 따뜻했다. 무릎을 쳤다.

! 나는 정말 방 고치는 기술자다.’

휴일에 모래와 시멘트를 싣고 갔다. 장판을 걷어내고 방바닥에 시멘트로 미장이 되어 있는 부분을 깨어서 들어내고 바닥을 고르고 동파이프를 깔았다. 보일러 난방은 온수가 파이프 속으로 반복해서 돌며 바닥을 데우는 것이지만, 지금 시공하는 것은 구들의 열기를 빈 파이프를 통해서 전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파이프의 간격을 보일러 난방과 달리 간격을 좀 더 좁혔다. 한 뼘 간격으로 파이프는 방바닥에 원을 그렸고 그 위에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마장 마감을 했다.

다시 휴일이 돌아오고 고향으로 갔다. 방바닥은 바싹 말라 있었다. 걷어 두었던 장판을 깔고 이불을 펴고 부엌으로 가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전번만큼 나무를 준비해서 아궁이에 넣었다. 마음은 방바닥에 가 있지만 조금 기다려야 된다. 나뭇잎으로 막힌 마당의 수챗구멍을 넓히고 집 뒤를 한 바퀴 돌아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먼저 따뜻함이 전해져 왔다. 윗목에 손을 넣어 보았다. 따뜻했다. 아랫목은 좀 더 따뜻했다.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통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팼다. 기쁨은 땀이 되어 나왔다. 장작을 한 부엌 쌓아 두고 이불을 개어 두기 위해 방으로 갔다. 방문을 열자 단내가 확 났다. 이불을 걷어내자 방바닥 전체가 찜질방처럼 뜨거웠다.

마침 다음 휴일은 연휴라 하루 쉬고 올 겸 해서 아내와 함께 갔다. 지난번에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한 아름의 장작만 넣었다. 저녁에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오셨다. 큰어머니는 방바닥 여기저기 손을 대 보며 야야! 이이구야!”를 연발하며 당신 방도 이렇게 고쳐 달라고 했다. 큰아버지는 당시에 이런 자재도 기술도 없었던 것을 아쉬워하며 말했다. 구들장을 산에서 캐어 오고 흙을 이겨 구들을 놓는 이야기를 해서, 구들 청소를 할 때는 불난 집같이 동네가 연기로 덮였다고 했다.

큰아버지는 이렇게 방도 골고루 따뜻하고 나무도 적게 들고 아궁이 재만 쳐내면 되는 것을 하며, 뭔가 허전한 듯 달이 지도록 이야기를 하고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