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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질시루에 핀 사랑 / 홍애자

질시루에 핀 사랑 / 홍애자

 

 

 

언제나 초가을이 되면 어머니는 시루떡을 찌셨다. 커다란 질시루 밑에 큼직한 무를 골라 얄팍하게 잘라 깔고 쌀가루와 팥을 한 켜씩 얹어 무쇠 솥에 올려놓고 찌셨다. 시룻번이 말갛게 익고 한소끔 김이 오르고 나면 솥 가장자리에 눈물이 흐르고 들큼한 팥고물 냄새와 무 익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이때쯤이면 제일 먼저 내가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이웃집에 나눌 떡 접시를 챙기고 닦아 준비하는 일이 바로 내 몫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궁이에서 활활 타고 있는 장작을 앞으로 꺼내느라 얼굴이 벌겋게 익어 불을 줄이시며 남아 있는 불꽃으로 서서히 익혀야 뜸이 든다고 했다. 시루떡을 찌는 날은 마치 잔치를 벌이는 집처럼 온 집안이 들썩거린다. 부엌일을 하는 아주머니는 연상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아가며 종종 걸음을 치고 식구라야 서너 명밖에 없는데도 분주하고 떠들썩해진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시루떡을 편편히 잘라 주 세 켜씩 접시에 담아주시면 나는 신바람이 나서 이 집 저 집으로 나르기에 다리가 아픈 줄도 몰랐다. 이른 저녁을 끝내고 속이 출출하던 차에 구수한 시루떡을 받아든 이웃들은 여간 반가워하는 게 아니었다. 어스름이 가신 하늘에는 보석 같은 별들이 반짝이고 별들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내가 꿈꾸는 미래가 저 별 속에 숨어있다고 믿었다. 반짝이는 별에게 소원을 말하고 정성스레 빌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게 이루어 질 것이라는 나만의 확신을 가졌다. 그렇기에 떡 돌리기는 내게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푸짐한 떡 잔치는 나의 공상 속에서 매년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의 꿈은 점점 여물어 갔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해 먹을 수 있는 시루떡이 왜 내게 그렇듯 미래의 꿈을 키우는 동기가 되었을까. 타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작은 가슴에 기쁨을 가득 채우게 해주신 어머니 때문이었을까. 떡을 돌리며 나누고 베푼다는 것을 체험하고, 잔잔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뒤늦게 덕행을 가르치신 뜻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어머니는 내 옆에 계시지 않았다.

몇 년 전 남대문 시장엘 갔다가 어릴 적 내가 늘 보아왔던 시루와 똑같은 질시루를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앞 뒤 생각할 겨를 없이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 시루에 떡을 찔 것도 아니면서, 어머니를 만난 듯 가벼운 흥분 때문이었을까. 다음 날 양재동 화훼시장엘 가서 꽃을 사다가 듬뿍 심었다. 팬지의 아름답고 귀여운 자태가 질시루와 잘 어우러져 더욱 운치가 있어 보인다.

시루 속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푸근함이 서려있다. 우직하면서도 과묵한 채로 시루는 어떤 것이든 모두 수용한다. 불평도 없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또한 어떤 것과도 잘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이 있다. 퇴색된 색깔에 아무렇게나 생겼어도 두루뭉술한 것이 부잣집 맏며느리의 성품처럼 온화하다. 어머니는 그런 시루를 어루만지시며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딸이 시루를 닮아 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를 바라신 것이다.

현관 밖 질시루 속 팬지가 환하게 웃는다. 들어오고 나가는 식구들이나 손님들을 대하며 항상 웃고 있다. 어머니가 나를 반기듯 그렇게 웃는다. 딸이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사랑이 질 시루에 하나 가득 피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