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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자락길 소요(逍遙) / 조이섭

자락길 소요(逍遙) / 조이섭


 

 

산 초입이 가풀막지다. 무엇이든 처음이 버겁고 힘들다. 예전에 등산할 때는 커다란 배낭이 터질 듯이 이것저것 집어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보조 가방까지 주렁주렁 매달았다. 이제는 길 나서기가 간단하다. 가벼워서 좋다. 생수 한 병, 작은 수첩과 연필 하나, 손수건 한 장이면 그만이다. 모두 하나씩이면 부족함이 없다. 어깨가 가벼우니 비탈진 길도 쉬이 오른다.

앞산의 허리를 감아 도는 자락길로 접어든다. 바람길이 훤하게 뚫렸다. 지난주 내린 가을비로 나뭇잎이 떨어져서 황갈색 양탄자를 짜서 바닥에 펼쳐놓았다. 나지막이 앉아 있던 가막살나무, 쥐똥나무의 가느다란 줄기도 잎을 떨구고 가볍게 흔들린다. 나뭇잎에 가려져 있던 산사 기왓골이 까맣게 드러나 보인다. 이렇듯, 나무는 벌써 겨울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보이는 만큼 생각한다. 가을에는 나무처럼 옷을 벗어버리고 싶다. 뜨거운 용기와 열정에 감춰진 두려움과 좌절의 여름을 떨쳐내고 맞은 소중한 가을이다. 우리 인생도 잎이 무성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던 여름과 달리 가을이 되어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줄기만 남듯이 단순해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즈음 꽉 차게 그린 유화보다 담백하고 여백이 그윽한 수채화가 더 좋아지는가 보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니 성냥갑 같은 도시가 말갛게 다가온다. 저 비좁은 도심에서 많은 사람이 아웅다웅, 오순도순, 고만고만하게 살아간다. 산 허리춤에 서서 장기판의 훈수꾼처럼 내려다본다. 한 수 거들어 볼까. 부질없는 생각이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시간을 씨줄로, 정성을 날줄 삼아 나름의 몫만큼 희망을 짜 내려야 할 것을.

젊었을 때는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지만, 지금은 산허리를 감돌아 거닌다. 가고 오는 시간을 재어보면 가는 길 보다 되돌아오는 길이 훨씬 빠르다. 갈 때보다 올 때가 몸이 풀려 걷기가 더 쉬워서가 아니다. ‘가는 길혹은 되돌아오는 길이라는 마음먹기에 따라 거리가 멀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집에 가 보았자 별로 반겨주지 않는 쪼그랑 마눌님 밖에 없어도 돌아가는 길이 훨씬 가깝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고 결혼하는 인생의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기까지 힘이 많이 든다. 이것저것 빨리 갖추고 싶은데 시간이 더디게 간다. 집 한 채 마련하는 데 왜 그리도 오래 걸리고 승진 한 번 하려면 한해 한해가 얼마나 마딘지 모른다. 그러다 중년을 넘어서면 시곗바늘이 갑자기 빨리 돌기 시작한다. 어느새 정년이 코앞이다. 세월은 자기 나이만큼의 속도로 달려간다는 말이 텅 빈 가슴을 두드린다.

안지랑골에 도착하여 심호흡을 몇 번 하는데, 허리가 기역으로 꺾여 머리가 땅에 닿을 듯한 할머니가 저만치에서 지팡이를 앞세우고 쉬엄쉬엄 오고 있다. 조금 전 지나쳐 온 나하고 도착한 시간이 별 차이가 없다. 오십보백보다. 산이든 인생이든 조금 일찍 올라왔다고 잘난 체하고 우쭐거릴 일이 아니다.

산에는 땅만 보고 부지런히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천천히 가는 이도 있다. 모두 자신의 성격과 나이에 맞추어 적당한 속도로 걸음을 내디딘다. 산에서는 아래 세상과 달리 누가 앞질러 가도 성내는 사람 하나 없다.

산책을 마치고 처음 출발했던 들머리 되돌아 와 있다. 한구석에 있는 먼지떨이로 등산화와 바지에 묻은 흙과 먼지를 털어낸다. 산에서 티끌 하나 가져오는 것 없이 올 때 그대로이다. 마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때 빈손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집으로 가는 순환도로 건널목의 빨강 신호등이 발걸음을 가로막는다. 건널목을 건너면 곧바로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다. 길 건너편에서는 사람들이 자락길을 올라가려고 파랑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맑고 상쾌한 공기와 더불어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행복하고, 그들은 무대에 올라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연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설렌다.

신호가 바뀌었다. 훠이 훠이 팔을 흔들며 산 아래 성냥갑 세상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