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 세 그루 / 김규련
오늘도 학산을 돌고 있다. 밤새 뿌리던 비는 멎고 햇살이 눈부시다.
요 얼마 동안 길섶을 지날 때마다 텅 빈 숲에서 소곤소곤 분주한 움직임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산은 어느덧 연초록 비단으로 속살을 가리게 됐다.
한 삼 년 거의 매일 똑같은 산길을 거닐다 보니 무심코 오르내려도 가슴에 설렘이 온다. 산도 사람과 같아서 옷소매 스치면 정이 묻어나는 것일까.
이제 학산의 풀과 나무며 텃새들과 미물까지도 나에겐 예사롭지 않다. 내가 침묵으로 곁을 지나가도 내 마음을 읽은 듯 몸짓으로, 소리로, 아니면 빛깔이나 향기로 화답해 온다.
흙과 돌멩이를 밟으며 떡갈나무 숲 속을 지나다 말고 문득 발이 멎었다. 겨우내 눈보라를 맞으며 고사목처럼 서 있던 나무들이 싱싱한 새싹을 툭툭 터트리고 있지 않은가. 청명이 지나고 나면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산새들은 나무숲을 가르며 지저귈 것이고 신록은 더욱 찬란할 것이다.
때가 되면 봄은 오기 마련이다. 헌데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봄이 되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나머지 눈시울이 젖도록 그 은혜로움에 감사 드리곤 한다. 늙바탕이 깊어 갈수록 아름다운 것이 어디 봄뿐이겠는가. 사철이 그 나름대로 다 아름답다. 인간사 모두가 아름답고 귀하고 정겹지 아니한 것이 있으랴.
학산에는 한 세기 넘게 살아온 듯한 노송이 세 그루 서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며 사람의 희비 영욕을 한 발치 뒤로 비켜서서 백 년을 하루같이 한 자리만 묵묵히 지켜 온 노송들, 나는 그들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짐을 느낀다.
때로는 기를 받아보려고 두 팔로 한참 동안 껴안기도 하고 묵언으로 깊은 대화를 나눠 보기도 한다.
나는 마침내 그들에게 나만 알 수 있는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첫째 노송은 나의 내면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의 나무요, 둘째는 슬기 한 소식 얻어 갈 수 있는 지혜의 나무요, 셋째는 뭣인가를 다짐해 보는 서원의 나무이다.
거울의 나무 앞에 서서 내 마음의 뜨락을 들여다본다. 수목이 우거지고 냇물이 흐른다. 구름이 떠가고 새들이 날아다닌다. 평화로운 산골 마을 풍경이다. 더 살펴보면 후미진 곳에 쓰레기 더미가 감춰져 있지 않은가. 언제쯤 이 쓰레기마저 걷어치울 수 있을까.
오늘은 웬일인지 지난날이 번득 눈앞을 지나간다. 젊은 시절 한때, 부질없는 욕망을 이루지 못해 비틀거리고 좌절하고 분노했던 내 모습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내 분수에 넘는 허황된 꿈이 산산이 깨뜨려진 것이,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새는 하늘을 날아다녀도 발자취를 남기지 아니하고 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흙을 더럽히지 아니한다. 나는 이름 없는 한 포기 들풀로 남아 많은 민초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큰 흔적 없이 한세상 살게 된 것을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지혜의 나무를 만나면 슬기 한 자락 얻어 가려고 노송에 등을 대고 선다. 흩어져 제멋대로 흔들리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본다. 그 마음을 노송 속으로 조용히 침잠시킨다. 노송에도 생명력이 흐르고 있다. 그 생명력의 흐름을 타고 노송 뿌리에서 땅속으로, 솔잎에서 하늘로 빠져 나와 천지에 가득히 흐르는 큰 생명력과 합류한다.
자연의 큰 생명력은 흙 속에도 바람 속에도 흐르고 물과 구름 속에도 가득 차 순환하고 잇다. 온 누리 도처에 생명력이 돌지 않는 곳이 없다. 그 경이로운 힘이 만물을 생성케도 하고 소멸시키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자연의 큰 생명력이 곧 조물주요, 신이요, 여래일지도 모른다.
그 생명력에 실려서 일초 일목 두두 물물 삼라만상을 꿰뚫고 두루 다녀 본다. 문득 느껴 오는 것이 있다. 돌멩이 하나 굴러 떨어지는 것도, 한 떨기 제비꽃이 피어나는 것도, 한 마리 나비가 나는 것도 모두 까닭이 있고 이치가 있다. 바위는 부딪쳐야 소리가 나고 생명은 씨알이 깃들 때 태동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종교는 기적의 결과를 바라서가 아니고 거룩한 원인을 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자연의 큰 생명력 속에는 온갖 목숨들이 주렁주렁 무량으로 달려 있다. 이 목숨들이 몸을 바꿔 가며 나고 죽고 거듭하는 데도 어떤 법칙이 있으리라. 태어남은 죽음의 시작이요, 죽음은 태어남의 시작이다. 살아 있다고 야단스럽게 기뻐할 것도 아니고 죽는다고 크게 슬퍼할 것도 아니지 않는가.
서원의 나무에 이르면 뭣인가 원을 세워야 한다. 바람직하고 순수한 원이 점점 강렬해지고 커지면 구질구질한 욕심들은 차츰 마음밖으로 밀려나게 된단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뚜렷한 원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진실로 이웃을 위해 섬기고 나누고 베풀고 헌신해 본 일이 없는 내가 무슨 원을 세운단 말인가. 나와 이웃이 둘 아닌 하나의 몸이란 동체의식이 몸에 배어들 때까지 마음을 닦고 또 닦아내야 된단다. 어쩌면 나에겐 거의 불가능한 공부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무원의 원을 세워 둘 수밖에 없다.
석양이 비끼고 있다. 산에 나들이 왔던 사람들이 서둘러 하산하고 있다. 나는 평소와 같이 산 정상에 올라와 사방을 내려다본다. 드넓은 광야를 꽉 채운 수많은 건물들이 쉼 없이 호흡하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비롯하여 저마다 안락이며 환희며 행복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고통 없는 안락, 슬픔 없는 환히, 불행 없는 행복이 어디 있으랴.
쿵쿵 지팡이를 짚으며 산을 내려오고 있다. 불가에서는 도를 깨치고 덕이 높은 사람을 선지식이라 한다던가. 어느덧 노송 세 그루가 내 가슴에 옮겨 와 선지식으로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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