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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장마 / 류영택

장마 / 류영택

 

 


 

 

나는 볏짚가리 뒤에 숨어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다. 타작을 하던 사람들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아버지는 말아놓은 국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허연 막걸리 한 됫박으로 중참을 대신 했다. 입을 굳게 다문 아버지는 다시 탈곡기에 보릿단을 집어넣었다. 집어삼키듯 빙빙 돌아가는 탈곡기에 보릿단이 빨려들 때마다 덜컹덜컹 발동기는 거친 숨을 내 쉬고 X자로 꼬인 피댓줄은 늘어져 출렁 거렸다. 아버지는 가슴속 울화를 그렇게 풀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그날 내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당시 우리고장에는 대부분 보리농사를 지었다. 개중에는 드물게 특수작물로 배추를 재배했다. 통일벼가 나오기 전이니 그때가지도 보릿고개가 심했다. 장마가 오기 전에 보리를 벨 수 있으니 그 이상 안전한 농사는 없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포기하고 열 마지기 밭에 수박하우스 재배를 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우곡 그린수박하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최상품으로 쳐준다. 크기도 그렇고 당도도 최고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어머니는 물 조리로 수박에 물을 주느라 '내가 류관순 열사 아버지 역'을 맡아다며 자랑을 했는데도 어머니날 행사에도 오지 못했다.

몇 달 후, 고생한 보람이 있어, 내 머리통보다 더 큰 수박이 주렁주렁 달렸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수박을 출하할 수 있게 됐다. 출하를 며칠 앞두고 비가 내렸다. 장마철에 접어든 것이다. 다행히 우리고장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윗물(강 상류)이 많았다. 찰랑찰랑 제방에 물이 범람하려하자 마을 사람들은 밤이면 횃불을 밝히고 낮에는 지게에 흙을 져다 제방의 약한 부분을 보강했다. 철없던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제방에 나가기만 하면 평소 못 먹던 음식이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공동의 적, 제방이 터지는 날엔 제일 피해를 많이 보는 사람은 토지 많은 사람이고, 하루하루 끼닛거리 걱정하는 사람도 집이 물에 잠길까봐 팔자 좋게 들어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중, 제일 속이 타들어가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수박에 모든 것을 걸었으니 제방이 터지는 날에는 한해 농사를 파농 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빚더미에 나앉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제방을 잘 지켜달라며 틈틈이 먹을 것을 마련해야 했다.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아버지는 지게에 져다 날랐다. 무박사흘, 강 건너 쪽 제방이 뻥하고 터지자 사람들은 들고 있던 횃불을 일제히 내리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사랑방 가마솥이 물에 잠겨 있었다. 마당에도 발목이 잠길 정도였다. 강 건너 제방이 터지면 한쪽은 무사했었는데. 우리 쪽 제방도 터져버린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밤잠을 설치며 제방을 지킬 때와 달리 막상 일이 벌어지면 할 만큼 했으니 나머지는 하늘의 뜻이라며 의외로 현실을 빨리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가족에게는 그게 아니었다. 모든 게 물에 잠겼다면 올해도 대한곡(흉년이 들면 정부에서 빌려먹은 곡식)을 갚기는커녕 도로 빚지겠네. 반쯤 울음 섞인 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밀려든 흙탕물에 둥둥 떠밀러 온 수박을 보니 그 비통함이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열 마지기 수박이 그렇게 많은 줄은 나는 미처 몰랐다. 양식 어장처럼, 물에 잠긴 들에는 온통 떠다니는 수박뿐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동네 형들은 팬티만 입은 채 물에 뛰어 들었다. 분명 우리 수박인데, 그들은 물놀이 하듯 수박을 물 밖으로 내 밀었다. 아무리 우리 수박이라며 가져가지 말라고 해도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별 미친놈 다보겠다는 듯 나를 흘겨봤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보다 못한 나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두 다리로 물장구를 치며 수박을 밖으로 내밀었다. 겨우 네 덩이를 건져내자 힘이 빠져 더 이상 헤엄을 칠 수가 없었다.

'아이고, 우리 수박!' 속앓이만 할 뿐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가 수박을 들고 집으로 향하자 나를 본 어른들은 '모지양반, 인심한 번 후하게 썼네.' 그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의기양양하게 삽짝을 들어서자.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형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수박을 건져왔으면 칭찬은 못하더라도 이게 무슨 짓인가. 나는 수박을 축담에 내려놓고 형과 한판 붙었다.

"형이면 다가, 와 때리노!"

형과 나는 철벙철벙 발목이 잠겨오는 마당에 뒹굴었다.

"자슥아, 언제 철들라 카노!"

나는 두 살 벽을 넘지 못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은 분위기 파악을 했지만 나는 그것을 몰랐다.

늦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동산에 올랐다. 동산 반대쪽에서 발동기 소리가 들려왔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장마철에 누가 타작을 할까. 소리 나는 곳으로 갔다.

'이 판국에 남에 집 타작해줄 정신이 어딧나!' 나는 보리타작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지켜봤다. 아마도 탈곡기를 가지고 있던 아버지가 날을 잡아놓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수박을 건져야 할 것 아닌가. 온 동네사람들이 다 건져 가는데.

하늘이 높은 걸보니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잠시도 쉬지 않고 탈곡기에 보릿단을 밀어 넣기에 바빴다. 덜컹덜컹 거친 소리를 내놓는 발동기가 꾹 다문 아버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훗날 내가 세상을 알아가면서 알게 됐지만, 그날 아버지의 눈빛은 하늘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하늘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몇 시간만 더 제방에 버텨 서서 흙탕물의 기를 눌러놓았다면 수박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서둘러 제방을 빠져나온 자신을 원망했을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수박을 먹거나 장마철이 다가오면 나는 그날 일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