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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어머니의 밥상 / 이경은

어머니의 밥상 / 이경은

 

 

 

분탕국을 입 안에 한 숟가락 넣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목으로 국물을 삼키고, 내 마음도 마구 삼킨다. 몸 어딘가에서 개키는 소리가 들리고, 내 콧방울은 결국 빨개진다. , 이러면 안 되는데, 비가 내리는 탓이다. 비가 많은 계절이니까, 몸이 피곤하니까, 음악이 구슬프니까.

그냥 그것뿐, 별것 아니다. 한번 흐릿해진 머릿속은 쉽게 개지 않는다. 숟가락을 놓고 텔레비전을 틀었지만, 소리만 윙윙거리며 들어온다. 내 머릿속을 마비시키는 이런 감정들 앞에서 나는 아직도 변변치 못하게 당황하고 울렁댄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끈다. 이럴 땐 내 마음도 잠시 음소거를 작동할 수 있었으면.

신경숙의 어머니를 부탁해란 책을 사 놓고 2년이 넘게 들춰보지 못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내 손가락에 지난 세월들이 달라붙어 내 감정을, 내 눈물샘을 자극할까 봐, 아니 그 무엇보다 그 밑바닥까지 가야 하는 고통을 다시 만지작거릴 자신이 없어서.

나는 이제 담담해지고 싶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에게나 부모가 있고, 이별은 살아남은 자의 온전한 몫이다, 라며 묵묵히 걷고 싶다. 지나칠 만큼 냉정해져야 살아나갈 힘이 생길지 모른다.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안다. 그것도 기가 막히게 놓쳐버렸다면, 그의 가슴은 차마 들여다볼 수 없다. 산들거리는 한 줄기의 바람으로도 마구 파헤쳐진 그곳을 건드리면 안 된다.

어떤 이에게는 향기로운 바람이 그에게는 독한 최루탄이다. 근육이 조금 긴장된 채로, 그동안 일부러 내팽개쳤던 책을 읽었다.

작가의 소설 뒷이야기가 소설의 비감한 분위기를 행복하게 젖히고 있었다. 책장을 말없이 덮었다.

나는 몸이 아프거나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어머니의 음식들이 생각난다. 몸이 으슬으슬해지면 양지나 아롱사태 소고기에다 큰 대파 대여섯 개를 자르지 않고 그저 손으로 툭 반으로 접어 넣고, 마늘은 큰 숟가락으로 듬뿍 넣어 끓인다.

한소끔 끓이면 물에 잠깐 불린 당면을 넣고 다시 끓인다. 우리는 그것을 '분탕국'이라 부르고, 그릇에다 당면을 잔치국수처럼 넣고 뜨끈한 소고기국물과 함께 먹는다.

그렇게 땀을 내며 먹으면 대개는 아프지 않고 넘어간다. 이 음식이 어머니에게 속한 남쪽의 음식인지, 아버지에게 속한 이북의 음식인지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그야말로 나에게는 훌륭한 예방 음식이다.

비가 오는 날엔 어머니는 부추에다 조갯살, 계란을 넣은 단순한 내용의 부침개를 스무 장씩 부쳐 채반에 얹어 놓으셨다. 우리는 들락날락하면서 그 노적가리처럼 쌓인 부침개를 게 눈 감추듯 부지런히 한 장씩 두 장씩 해치웠다. 한창 자라나는 세 아이의 입은 그리 무서웠다.

밖에서 내리는 비의 큼큼한 냄새와 부침개의 나웃한 기름기가 입 안에 가득 고였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솜씨 좋은 어머니에겐 짐이기보다는 그게 행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비가 오는 날 나도 어머니처럼 부침개를 부칠 때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식구들은 '할머니' 하면 자기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음식을 하나씩 기억해낸다. 온 식구들을 불러다 먹이려고 쟁반에다 수없이 만들어 놓던 유부초밥.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슷하지 않은, 입에 깔작하게 짝 달라붙던 곱창전골의 독창적인 국물과 시원하게 깔끔하게 끓이는 동태찌개, 특히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 중에 무와 콩나물을 슴슴하게 함께 넣어 만든 나물-

겨울철에 살캉 얼려 먹을 때의 그 시원한 국물 맛은 말이 부족하고, 차례를 다 드리고 나서 늘 무슨 치레마냥 먹었던 비빔밥의 주재료인 '할머니표 고사리나물'과 함경도식 열무국물 김치를 곁들인 김치말이국수는 그야말로 대를 이은 어머니의 대표 음식이었다.

어느 날 5대 종손 외아들 더 먹이려고 집에 왔다 돌아가는 사위들에게 넉넉히 퍼 주지 못했던 그 문제의 열무국물김치. 그 다음부터 넉넉하게 준비하셨지만, 어머니는 당신을 놀려대는 사위들의 눈치를 내내 보셨고, 우리는 매번 한껏 웃었다.

어머니는 평생 멋지게 적힌 레시피 한 장이 없었지만, 음식에 대한 촉을 타고나셨다. "얼마 넣어?"하고 물어보면 "대충."하셨다. 도대체 그 대충은 절대 대충이 아니다.

하지만 노인이 되면서부터 자꾸 간이 짜지고 달아져서 자식들이 뭐라 한마디 하면, 언짢으셔서 들은 척도 안하셨다. 어머니에게 음식은 자존심이자 특기였으며, 당신만의 고유한 예술세계였다.

이게 모두 어머니의 밥상이었다.

참으로 비가 많은 계절이다. 그래서 턱없이 그리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