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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숨어 피는 꽃 / 김미옥

숨어 피는 꽃 / 김미옥

 

 

 

우리 집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아직은 여린 봄 햇살이 베란다의 유리창으로 부드럽게 퍼지는 아침나절이다. 약속이 있어 일손을 서두르던 나는 예기치 못했던 얼굴과 마주치고 어쩔 줄 몰랐다.

꼭 일 년만의 만남이다. 일 년이란 시간의 개념보다는 아무런 수고도, 대가도 치르지 않고 다시 맞는 감동이기에 이토록 버거운 것이다. 베란다의 제일 구석진 곳, 세탁기와 장독이 맞물리는 코너에 붙박이처럼 자리한 지 십년 째인 선인장 화분, 올해도 어김없이 그 탐스런 꽃망울을 활짝 터트리며 진분홍 미소로 말을 걸어온다. 반가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빨래 널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나눈다.

오래 전, 잘 가꾸어진 계획도시인 창원에서 참으로 전망 좋은 아파트에 살던 때였다. 푸른 자연을 맘껏 안아 들일 수 있는 탁 트인 창으로는 엄마 손잡고 놀러 나온 아가들이 꽃잎처럼 나풀거리며 그네 타는 모습도 보였다. 시원한 베란다에는 하나 둘씩 모아들인 갖가지 화분들이 어느새 그럴싸한 꽃밭을 이루고, 계절을 바꿔가며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집안을 늘 신선한 향기로 채워 주었다.

아직 바람소리 매섭던 2월 어느 날. 남편이 승진 시험을 보러 서울로 떠났다. 괜스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집안을 서성대던 나는 두꺼운 솜이불 호청을 벗겨 내었다. 소매를 둥둥 걷어 올리고 어깨가 뻐근하도록 뽀얗게 빨아 널고는 손질하느라 종일 베란다를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한 구석에서 야무진 꿈을 품고 있는 선인장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다음 날 아침이다. 베란다에 나간 나는 두견화 빛깔 선인장꽃보다 더 진한 울림에 가슴이 쿵쿵 거렸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을 몰아세워 열심히 공부한 사람만큼이나, 겨우내 다듬고 준비해 왔던 어떤 함성을 밤새 나팔처럼 긴 목으로 열심히 뽑아 올려 윤기 나는 입술로 함빡 터트리고 있지 않은가! 뭔가 좋은 예감일 것 같은 떨림으로 조심스레 화분을 안아 거실에서 잘 바라보이는 곳으로 옮겨 앉혔다. 담배를 물고 베란다에 나간 남편 역시 한 동안 꽃에 눈을 맞춘 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겨울 눈발이 희끗희끗 날릴 때부터 마디 끝마다 좁쌀만한 꽃눈을 달고는 쌀알만 하게, 땅콩만 하게 아주 조금씩 키워가더니 어쩌면 꼭 오늘 아침에 맞춰 그 긴 침묵을 터트려 준 걸까. 왠지 미리 올려주는 팡파르로 느껴져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나와 꼭 같은 기대를 실어보는 것일까? 남편의 뒷모습에도 가벼운 흥분이 스치는 것 같았다.

유난스레 탐스럽던 그 때의 그 자태로 변함없이 다시 찾아와 준 선인장꽃, 십년 전 창원 집을 세 주고 그 돈으로 서울로 이사하다보니 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베란다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베란다를 가득 채웠던 화분들은 대부분 정리하고 예쁜 금붕어와 함께 이웃에도 더러 나누었는데, 어찌 용케도 선인장이 딸려 왔다. 그다지 볼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꽃필 때가 아니면 눈길조차 잘 가지 않는데도 그 때의 특별한 인연 때문에 복잡한 이삿짐 틈에 기어이 실어왔던가 보다. 키 큰 세탁기에 가려 좋아하는 햇볕도 양껏 받지 못하고 시원한 공기조차 마음대로 마시지 못한 채 뚝 갇혀 살았다. 집의 구조상 복도를 사이에 두고 베란다가 따로 있고 보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고 때를 맞춰 목을 축여주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도 검붉게 굵어진 고목 같은 쉬지 않고 게 발 같은 마디를 계속 달아내고 때를 잊지 않고 이렇게 꽃까지 피운다. 함께 옮겨와서 집안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던 꽃과 나무들은 결국 적응을 못하고 시나브로 하나씩 떠나버렸는데,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키듯 유독 제일 방치해 두었던 선인장이 남아 이런 설렘을 안겨주다니.

어느 곳에 어떤 상태로 있든 탓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선인장을 보며 새삼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이런 저런 트집과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며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요즘인가. 가만히 자신을 돌아다본다. 난 과연 내게 주어진 직분을 얼마나 충실히 해내고 있는 걸까. 한 가정의 주부, 한 남자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 맏며느리 큰 동서, 홀로 계신 어머니의 막내딸, 공부하는 학생, 남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상담자때로는 피하고 싶어 속 끓인 적도 있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등 떠밀려 앞에 나서던 학창시절을 제외하고는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만큼 조용히 살아오긴 했지만, 그동안 얼마나 내실을 기했는지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푸르른 잎의 계절엔 그냥 다 함께 녹색의 세계로 보일 뿐이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빨간 사과, 주홍빛 감, 노란 유자로 저절로 드러나듯 꾀부리지 않는 성실한 삶의 자세는 나름대로 의미를 창조해가는 과정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화려한 장미도 좋지만 길섶에 핀 앉은뱅이 제비꽃의 소박하고 진솔한 아름다움에 더 마음이 와 닿을 때가 있다. 얼마 전 신문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 산업체 부설 야간 고교나 통신고 등, 남들이 꺼리는 학교를 찾아다니며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변변히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소회된 아이들의 선생님이기를 원하셨던 분 얘기다. '교장'이나 '교감'이란 이름 대신 교실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을 앞자리에 놓고 세상의 명예나 화려함 따위와는 상관없이 '평교사'란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선생님, 문득 청신한 솔바람 향기가 가슴으로 밀려왔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깊은 산속 바위 틈에 숨어서 피는 꽃들이 있기에 지구는 언제나 아름답다고 했던가. 남들이 시선을 의식하거나 조건을 탓하지 않고 그늘진 곳에서 숨은 향기를 발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따스함이 남은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언제나 내게 주어진 몫도 제대로 챙겨 갖지 못한다고 더러 핀잔하는 이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홀로 살며시 피어나 수줍은 듯, 그러나 떳떳하고 당당한 그 모습이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굳이 드러나려 애쓰지 않고 불평하거나 욕심 부리지 않는 중에도 최선을 다해 조용히 피어난 꽃, 나로 인해 즐겁고 편안함을 느끼며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뿌듯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숨은 꽃으로 족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