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익이 / 박경주
발로 차 먹고사는 사람이 있었다. 축구 선수는 아니었다. 저잣거리의 단속꾼, 천익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에도 몇 차례나 긴 시장거리의 난전을 오갔다. 그가 하는 일은 군홧발로 좌판을 냅다 차는 것이었다.
소위 불법 상인들을 내쫓는 단속반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지지리도 배운 것 없고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그야말로 저자에 좌판 하나 올려두고 장사할 밑천도 없었기에 발로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야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온 가족에게 보리죽이라도 먹일 수 있었다.
천익이 사는 판잣집이 응암동 어디 산기슭이었기에, 그의 일터도 응암동 신양극장 뒤 어느 시장이었던 것 같다. 동이 트면, 난전 상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줄이 그어져 있지 않지만, 모두 어제 자기들이 앉았던 그 자리를 정확히 찾아 앉는다.
아무리 발로 차이고 끌어내어도 날만 새면 꼭 그 자리에 앉았다. 시장은 길게 열렸다. 한 바퀴 도는 데 족히 한 시간 반은 걸렸다. 천익이는 상인들의 물건이 담긴 빨간 플라스틱통과 종이상자를 거침없이 발로 걷어찼다.
마구 차야 했다. 그가 멀리서 나타나면 상인들은 재빨리 길 가운데 펼쳐 둔 야채며 생선, 개고기, 순대, 묵, 과일, 빗자루 등등을 주섬주섬 챙겨 황급히 길가로 달아났다. 점포상들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아마도 천익이가 받는 돈은 그들이 내어주는 건지도 몰랐다. 대학교 2학년 때였을까. 아버지 심부름으로 천익의 집을 찾았다. 천익은 나보다 네 살 위였고 그 어머니는 내 고모였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 고모부 제사에 긴히 쓰라고 향촉 대금을 전하러 갔을 게다.
고모는 판자촌의 초라한 쪽방에 살았다. 집 앞에서 고모는 낱담배와 시루떡을 팔고 계셨다. 방바닥은 당시 아리랑 담배 껍질을 모아 이어 붙였다. 그 껍질이 퍽이나 반들댔기에 방바닥은 니스를 먹인 것처럼 번쩍번쩍 윤이 났다. 사람이 그렇게 가난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해 질 녘이었다. 바깥이 시끄러웠다. 덩치 큰 사내들이 몰려와 좌판에 있던 고모의 떡시루를 발로 걷어찼다. 그들은 불법 노점상 단속반이었다. 마구 욕설을 퍼부었고, 고모는 손을 모아 사정했다.
밤늦게 귀가한 천익이 오빠는 그 얘기를 듣고 분을 이기지 못했다.
"나도 발로 차고 다니지만 그렇게는 안 찬다 이 말씀이야. 난 말이야. 사과 궤짝하고 쓰레기만 냅다 찰 뿐이야."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발로 차기 전에 큰 소리 지르고 욕을 해대기 대문에 사람들이 충분히 물건을 치울 수가 있어. 그런데 이놈의 자슥들은!" 천익이 오빠는 손을 떨며 울부짖었다.
"아따, 괜찮애야. 그래도 꼭, 떡 다 판 해 질 녘에 오거든."
고모가 오빠를 위로했다.
고모네 떡시루는 알루미늄이라 다행히 깨지질 않았고, 고모 말처럼 해 질 녘이라 떡은 거의 판 뒤였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떡을 모아 고모는 이리 떼고 저리 떼어 쟁반에 담아 나를 주었다. 눈물 젖은 그 떡으로 저녁을 때웠다.
그날 밤은 고모의 만류로 거기 묵었다. 난생처음 판잣집에서 잤다. 그날 밤, 천익이 오빠는 날 데리고 푸념을 이어갔다.
"사실은 경주야, 내가 매일 발로 차고 다니긴 하지만, 손해 본 상인들도 없고, 나를 욕하는 사람도 없어."
"그게 다 오빠 기술이여."
"요것이?"
천익이 오빠는 나에겐 욕도 안하고 머리카락만 자꾸 쓰다듬어 귀에 걸어주었다.
겨울 아침, 바람은 찼다. 이튿날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고모 집을 빠져 나왔다. 가난은 구경하는 것도 슬프고 힘들었다. 어젯밤 단속꾼들이 떡시루를 발로 찼지만, 고모는 아침이 되자 오그라진 알루미늄 시루에 여전히 떡을 안쳤다.
떡이 익으면 어제 그 좌판에 다시 내다 놓을 게다. 그리고 며칠 후, 또 떡을 다 팔 해 질 녘에나 다시 그 사내들이 나타나 빈 시루를 발로 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것이었다. 그 무렵, 저 아래 시장에서는 천익이 오빠가 목청껏 소리 지르며 연신 사과궤짝에나 발길질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속삭이는 벽 / 임혜숙 (0) | 2017.07.28 |
---|---|
[좋은수필]해질녘 / 김창식 (0) | 2017.07.27 |
[좋은수필]숨어 피는 꽃 / 김미옥 (0) | 2017.07.25 |
[좋은수필]맷돌 / 이순금 (0) | 2017.07.24 |
[좋은수필]라데팡스의 불빛 / 맹난자 (0) | 2017.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