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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속삭이는 벽 / 임혜숙

속삭이는 벽 / 임혜숙


 

 

아주 가끔, 누군가와 꼭 껴안는 꿈을 꾸곤 한다. 그가 누구인지, 내가 그를 안은 것인지 그가 나를 안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왠지 행복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가슴에 든 얼음이 금방 녹아내리는 듯 따뜻한 느낌 때문일 게다. ‘허깅(hugging)’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치유라고 했다. 꼬옥 껴안지 않고, 두 손으로 어깨만 감싸 안아도 세월 안에 묻은 외로움과 쓸쓸함이 눈 녹듯 스러지기도 한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잠시 일한 맨해튼 한국학교에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학교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경매 상품에 아이들 데리고 센트럴파크 아이스 링크에서 스케이트 타기상품이 250불에 나왔다. 나와 음악 선생님이 그 상품에 당첨되었다. 스케이트를 타는 날, 아이들을 데리고 링크장으로 갔다. 그날따라 날씨는 차갑고 바람까지 불어서 더없이 을씨년스러웠다.

선생님, 날씨도 추운데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탈 테니, 선생님은 여기서 커피 한 잔 하시면서 보고 계세요.”

젊은 음악 선생님이 나를 배려해 주었다. 커피 대신 달콤한 핫초코를 사들고 빈 벤치를 찾아 앉았다. 신나는 음악도, 흥겹게 스케이트를 지치는 모습도 딴 세상의 일처럼 느껴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두 손으로 토닥거렸다.

선생님, 추우신데 고생하십니다!” 한 아이의 아빠였다. 너무 추워서였을까? 아니면 내 외로움이 너무도 무거워서였을까? 어깨를 감싸준 그 학부형의 손길에 난 그만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그 따스함이 오래오래 잊히질 않았다. 손은 그렇게 살짝 얹거나 토닥거리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얼마 전, 현대미술관에서 손에 대한 포스터 전시회가 열렸다. 1차 세계대전 포스터부터 1980년대 일본 자생단의 손톱 에나멜 광고까지, 손의 기능과 손이 표상하는 의미를 광범위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전후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해 서로 협동하며 일하는 손,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보를 치고 있는 손, 시각장애인들에겐 눈이나 다름없는 점자를 읽고 있는 소중한 손 포스터들이 눈길을 끌었다. 거칠지만 생동감 넘치는 손의 모습에서 새삼 손의 고마움이 느껴졌다.

한편 사람의 목을 죄고 있는 범죄자의 손과 갈등을 의미하는 두 주먹의 대결,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듯 아래로 향한 엄지손가락의 모습에서는, 파괴적인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중 <속삭이는 벽>이라는 낡고 늙은 손을 나타낸 모신스키의 흑백 포스터가 강하게 시선을 잡아당겼다. 아주 오래된 영화, 외롭고 가난한 과부 할머니의 망상에 관한 영화인 속삭이는 것들의 내용을 시사하듯, 크고 거친 두 손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포스터 속의 두 손은 우리에게 무엇을 속삭이고 있는 것일까. 잠시 궁금해졌다. 부와 명예를 움켜잡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늙고 텅 빈 두 손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상에서 손은 수천 가지 수만 가지로 쓰일 수 있다. 잡고, 붙들고, 만지고, 빼앗고, 때리고.

네 손은 어떻게 쓰고 있는가?”

갑자기 손이 내게 물어오는 것 같다. 가진 것을 더 얻기 위해 두 손을 욕심 사납게 벌리고 있지는 않는가? 손에 든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두 손을 꼭 움켜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의 마음을 생채기내는 긴 손톱을 달고 있지는 않는가?

어쩌면 손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내려놓고 빈손이 되어야 한다. 지치고 외로웠던 그 어느 해 겨울, 누군가의 손길처럼 가슴을 녹여주는 따뜻한 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