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이와 몽실이 / 오세윤
산책길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다. 단골로 가끔 가는 오리구이 집주인 아주머니가 기르는 백구가 새끼를 낳았다며한 마리를 덥석 안겨주는 바람에 엉겁결에 받아가지고 왔다. 순백색 털에 까만 눈동자를 한 한 달 배기,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그 집 앞을 지나치다 어미를 볼 때마다 나중 강화에 가 살게 되면 저런 녀석 한 마리쯤 키우리라 생각던 터여서 마다치 않고 안고 왔다.
그보다는 우리 발등의 불을 끄게 돼서 더 다행스러웠다. 지금 아파트에서 키우고 있는 시추, 일곱 살 배기 아랑이가 지난해부터 부쩍 활동량이 적어진 데다 온종일 잠만 자는 게 걱정되던 참이었다. 아무래도 혼자여서 그런가 싶어 어서 동료를 구해줘야겠다 벼르던 중에 공짜로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두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젖을 떼고 데려온 600그람짜리 털복숭이, 주인을 잘못 만나 데이트 한번 못하고 그만 중년이 된 아랑이는 지금도 몸무게가 3kg으로 왜소하다.
어릴 때의 아랑이는 애교 만점의 귀염둥이였다. 길을 가다 사람을 만나면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제 먼저 달려가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고 몸을 비벼대며 스스럼없이 안겼다. 다른 개들을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싸우기는 고사하고 으르렁거린 적 한번 없었고 짖어본 일도 없었다. 집에서의 행실도 얌전해 무얼 물어뜯거나 망가뜨리는 일도 없었다. 대소변도 잘 가렸다. 작은 몸집으로 연출하는 애교스런 탯거리와 커다란 둥근 눈망울로 아랑이는 이웃과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던 아랑이가 나이를 먹으면서 행동거지가 달라졌다. 놀기보다는 잠자는 시간이 많아지고 간식과 산책을 나가는 것 외엔 매사 흥미를 잃은 듯 몸놀림이 굼떠졌다. 불러도 시큰둥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얼른 달려오지도 않았다. 개도 주인을 닮는다더니 내가 조용한 걸 너무 찾는 탓에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우울증이 생긴 건지…….
강아지를 안고 오면서 나는 녀석에게 몽실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랑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하지만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몽실이를 거실에 내려놓는 순간부터 아랑이는 목울대를 울려 낮게 으르렁거리며 곁에 오지도 못하게 했고, 몽실이는 몽실이대로 떨어진 어미를 찾아 낑낑대며 주변을 시끄럽게 휘저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응가도 거실 곳곳에 실례해놓고 소변도 아무 데나 지렸다. 젖을 잃은 허기를 먹는 걸로 달래려는 듯 때도 시도 없이 먹어댔다. 불과 일주일 만에 몸집이 아랑이를 웃넘었다.
덩치가 달라지면서 전세마저 역전됐다. 지치지도 않고 아랑일 쫓아 디니고 몸을 비벼대고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고 잠자리를 파고들었다. 제 딴엔 함께 놀자고 그러는 모양이었지만 그럴수록 아랑이는 더 몽실이를 멀리했다. 같이 놀아주기는커녕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을 찾아 숨어들어 불러도 나오려 하지 않았다.
답답했다. 혼자 지내다 어린 동료가 생겼으니 데리고 놀아주어도 좋으련만 아랑이에게선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였다. 아랑이에게 몽실이는 귀찮고 버거운, 피하고만 싶은 대상인 듯 곁을 주지 않았다. 너무하다 싶어 야속하기도 했으나 달리 어째 볼 도리가 없었다. 그네의 감정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자기 영역이 침범당하는 게 참기 힘들어서이거나 아니면 올드미스 심사로 그러하는가 짐작이나 해볼 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몽실이의 장난은 점점 더 심해갔다. 신문지나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갈가리 찢어 놓기에서부터 양말짝 물어뜯기, 발가락 깨물기 등으로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았다. 현관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날 때마다 앙칼지게 짖어댔다. 이웃에게 미안했다.
하루 다르게 커가는 몸집과 활동량을 보자니 은근히 걱정됐다. 계속 아파트에서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은 바로 현실이 됐다. 데려온 지 열나흘 째 되던 날 일은 그예 벌어지고 말았다. 기왕에 계획되어 있던 2박 3일 남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마주친 집 안 정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앞 뒤 베란다와 거실이 온통 몽실이의 배설물과 찢어진 휴지조각과 걸레쪽들로 차마 목불인견의 난장판이 되어 있었따. 어질더분하기 파장 직전의 쇠전이요 큰물 끝의 대청호였다.
뒤따라 들어서던 아내가 어마지두에 질겁하여 코를 싸쥐며 비명을 질렀다. 아내의 얼굴을 나는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일 당장 돌려주겠다고 아내에게 거듭거듭 애먼 사과를 하며 허겁지겁 오물들을 치웠다.
정신이 번쩍 났다. 불견시도不見是圖, 다 자라 성견이 되었을 때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몽실이는 아파트에서 키울 개가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산책을 나서며 몽실이를 아고 나갔다. 오리구이 집안마당에 들어서자 어미 백구가 먼저 나서며 아는 체 짖는다. 기척에 현관문을 열고 나오던 주인이 사태를 짐작한 듯 씩 하니 웃으며 말했다.
"못 키우겠지요? 그럴 거예요. 암요, 아파트에선 못 키워요, 집사람이 드릴 때 말렸어야 하는 건데……."
사람 좋게 웃는 주인에게 마주 웃어주며 얼른 몽실이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민망하면서도 홀가분했다. 그래, 분수에 맞지 않는 건 인연이 아니지. 만물이 물각유주物各有主요 유유상종類類相從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을-. 녀석의 귀여운 외모와 진돗개라는 친근하고 구하기 쉽지 않은 타이틀에 현혹되어 잠시 앞뒤를 가늠 못한 경거망동이 뒤통수를 긁적거리에 했다. 둘레길로 접어들며 올려다본 늦가을 아침 하늘, 솔숲 너머 몽실 구름 하나가 인수봉을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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